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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행복, 그대와 춤을

행복한 집

by 훈 작가 2026. 5. 21.

집 없는 설움은 겪어 본 사람은 다 안다. 조금 과장하면 뼛속까지 한 맺힐 정도다. 콤플렉스처럼 날 괴롭혔던 단어가 내 집이다. 취업하면서 청춘을 올-인한 게 내 집 마련이었다. 모아도 모아도 뛰는 집값에 꿈이 멀어져 갔다. 그러다 인-서울을 포기한 채 나이 사십이 넘어 겨우 지방에 집(아파트)을 마련하고 노총각을 졸업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엔 집에 집착이 유난히 강하다. 저마다 사정은 다르겠지만 집에 대한 정서가 남다른 게 우리의 현실이다. 왜 그런지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다 안다. 지금도 집에 대한 대한민국 사회의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어쩌다 우리나라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콕 짚어 말한 순 없지만, 서글픔을 느끼는 서민들이 여전히 많다.

 

’, 영어로 ‘house’이다. 의미로 보면 물리적 공간이다. 정서적으로 접근하면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하고 퇴근하면 돌아가 휴식과 안정을 취하는 보금자리다. 이런 측면에서 은 영어로 (home)’의 의미까지 포괄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단순히 주거 공간을 넘어 정서적 안식처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렇듯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집에 가고’, ‘집에서 쉰다.’라는 말을 하며 생활한다. 그래서 우리가 말하는 집을 영어로 접근해 보면 ‘house + home’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일상에서 말하는 집은 ‘House’인 경우가 많다. 흔히 집 없는 설움의 집도 ‘home’이 아니라 ‘house’에 해당한다. 이는 집에 대한 소유 욕구 때문이다.

풍경 속에 들어온 멋진 집. 그 집 한 채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사실 멀리 있어 집인지 별장인지 알 수는 없다. 그래도 내 눈엔 집으로 보였다. 누가 사는지 긍금했다. 일단 부러웠다. 너무 멋져 보여서다. 저런 집에서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공기도 좋고, 조용하고, ~링이 따로 필요 없을 것 같은 꿈같은 집이다.

 

부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반면에 저런 집에서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중요한 것은 은 소유의 개념보다 중요한 게 있다. 정서적인 ‘home’의 개념이다. 겉으로 크고 멋진 집에 산다고 그게 바로 ‘home’이 되지는 않는다. ‘home’은 물리적 공간이 아닌 심리적, 정서적, 감성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내 이름으로 등기된 집(아파트)에 이사 왔을 때가 생각난다. 한 마디로 낯설었다. 한동안 어딘지 모르게 어색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여기가 내 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익숙해진 탓이다. 그때 깨달은 게 집은 소유의 개념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정서적으로 내 보금자리라고 느껴질 때 비로소 집은 완성된다는 사실을.

 

집에 개념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바뀌어질 것 같지 않다. 과장하면 한국 사회는 집에 너무 매몰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서울이 그렇다. 집이 인생의 전부인양 아우성치는 게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이런 상황에선 아무리 국민소득이 높아도 행복할 수 없다. 왜냐하면 'home' 없는 'house'는 빈 땅콩 껍질이기 때문이다. 

 

집은 'house'보다 'home'이 먼저야 한다. 그래야 행복한 집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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