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 작가 2023. 12. 21. 06:30

내리는 눈이 파란 하늘을 금방 하얀 하늘로 만듭니다. 그런데 하늘을 쳐다보면 눈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눈이 오는 사진을 찍어 보면 보기와 달리 생각만큼 잘 나오지 않습니다. 표현하기가 까다롭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함박눈이 내리면 소복이 쌓인 눈 풍경을 찍어 보기로 했습니다. 차라리 그게 낫다 싶었던 겁니다.

언젠가 인터넷으로 겨울 사진을 검색하는 데, 시선을 사로잡는 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다. 빨간 열매라 돋보이는 사진이었는데, 자세히 보니 산수유 열매였습니다. 하얀 눈과 산수유 열매가 예쁘게 보였던 겁니다. 기회가 되면 꼭 찍어 보고 싶었습니다. 기회란 게 별거 없습니다. 눈이 많이 내린 날이면 됩니다. 


함박눈이 내리던 날 근처 솔밭공원으로 갔습니다. 눈도 제법 많이 쌓였습니다. 짙은 흑갈색 나뭇가지와 몽글몽글한 산수유 열매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떻게 찍어야 그림 같은 사진이 나올까. 이리 보고, 저리 보고 고민을 해 봅니다. 경험상 생각 없이 찍으면 마음에 드는 사진을 건질 수 없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보통 출사에 나서면 보통 200장 정도는 찍습니다.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사진은 10% 정도도 안 됩니다. 무엇이든 배우는 것은 시행착오를 통해 실력이 늘게 되어 있습니다. 사진도 이론보다는 실전을 통해 감을 익히는 것이니만큼 왕도는 없습니다. 무엇이든 몸으로 터득하는 것은 잘 잊어버리지 않고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겨울 사진은 단언컨대 눈이 연출한 미학입니다. 단정적인 말은 안 하는 게 상식이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눈(雪)은 눈(目)으로 스치듯 보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미학의 관점에서 찾아야 보입니다. 출발점은 관찰에서 시작됩니다. 사진은 단순히 찍는 것이지만, 이를 무시하고 찍으면 마음에 드는 사진을 담을 수 없습니다.

풍경은 눈으로 봅니다. 보이는 미학은 누구나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진으로 즐기는 미학은 그렇지 않습니다. 멋진 사진은 숨은 그림 찾듯 자신의 시선으로 가위로 자르듯 오려낼 줄 아는 예리한 관찰력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빛으로 이해하고, 카메라를 통해 담아내는 것입니다. 쉬운 것 같지만 아름다운 사진을 찍는 것은 만만치 않습니다.


눈 내리는 하늘은 여백이 됩니다. 산수유 나뭇가지를 하나씩 가위로 오려내듯 카메라에 담습니다. 어떤 사진은 수묵화 같은 느낌이 듣기도 하고, 또 어떤 사진은 몽글몽글한 산수유 열매가 루돌프 사슴코를 보는 듯합니다. 찍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손이 시린 것 보니 자리를 뜰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아는 자가 좋아하는 자보다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보다 못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마 논어에 나오는 말일 겁니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추운 날씨에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지, 이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겁니다. 사실 사진과 관련해 아직도 배우면서 즐기고 있지만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도 눈의 미학을  즐겨보라  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