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무심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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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볼 때가 있습니다. 울적할 때도 보고, 마음이 허전할 때도 봅니다. 어디가 아파서가 아닙니다. 사는 게 뭔데 이렇게 아등바등하며 살아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 때 순간적으로 우울해지고, 마음 한구석에 쓸쓸한 바람이 휑하니 불어닥칩니다. 혼자 있을 때, 어느 날 지독할 정도로 좋은 하늘을 보게 되면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예전에 한참 마음잡기가 힘들고 어려울 때 답답한 나머지 그냥 하늘만 본 적이 많았습니다. 멍하니 보기만했습니다. 그때 멀리 있던 하늘이 다가왔습니다. 주춤했지만, 그게 싫지 않습니다. 차갑게만 보이던 하늘이 따뜻한 시선으로 날 봅니다. ‘힘들지’ 하며 내마음 아픈 곳을 어루만져주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무심결에 튀어나오는 말이 ‘참, 하늘도 무심하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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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적이 많았습니다. 뭔가 일이 안 풀리고, 답답할 때 하늘이 왜 이리 무심할까, 생각했습니다. 하는 일마다 일이 꼬여 풀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시작한 사업을 접어야만 했고, 방황 끝에 다시 취직한 회사에서도 승진 경쟁에 뒤처져 마음 고생이 심했습니다. 게다가 있는 거 다 까먹고 나니 통장까지 빈 깡통이었습니다.
언제 돈 벌어 결혼하나 싶었습니다. 좋은 시절 다 보내고 소주잔 기울이며 신세 한탄 많이 했습니다. '결혼은 내게 사치야',라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래도 축의금 봉투 들고 친구들 결혼식은 체면 때문에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부러웠습니다. 상대적 빈곤이 나를 초라하게 했습니다. 이후 선술집을 찾는 날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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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본 서울의 밤하늘, 조각달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러려고 한 게 아닌데 핑그르르 눈물이 돌더니 흘러내렸습니다. 나름 열심히 산 것 같은데, 하늘은 왜 내 마음을 몰라주는 거지, 하며 서러운 객지생활의 애환을 쏟아 붓고 싶었습니다. 사실, 하늘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다 내 탓인데, 그땐 시골 촌놈에게 만만치 않았던 서울생활이 힘들어 하늘을 원망했었나 봅니다.
흔히 말합니다. 살다 보면 궂은날도 있고, 갠 날도 있는 거라고. 만족하며 사는 이가 몇이나 있겠냐며 하늘을 닮은 듯한 말을 합니다. 인생은 이런 일 저런 일 겪으면서 어른이 되는 거니까 상심하지 말라는 겁니다. 좋은 의미의 말이지만 그런 말이 당시는 내마음에 와 닿지 않았습니다. 내 사정도 모르면서 그냥 립서비스 하고 싶어서 그런거라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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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하늘을 탓할 일이 없습니다. 무심하다고 할 일도 없습니다. 이젠 하늘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은 게 하나도 없습니다. 있다면 사진을 찍으러 나갈 때입니다.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좋은 날씨만 바랄 뿐입니다. 원하는 날씨가 아니라도 하늘의 뜻이려니 하고 마음에 새기는 일이 더 많습니다. 삶은 하늘에 순응하는 거라는 걸 오래 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살면서 하늘을 보는 때가 얼마나 될까. 생각보다 많지 않았던것 같습니다. 오늘도 보려고 본 하늘이 아닙니다. 그냥 시선이 닿았습니다. 새벽하늘을 궤적을 그으며 날아가는 비행기가 눈에 보였습니다. 그 옆에 초승달도 있습니다. 비행기가 지나가는 것처럼 세월도 언제 그렇게 가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월의 속도는 나이에 비례한 말이 맞는 듯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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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하늘이 보고 싶을 때가 있긴 있습니다. 여름철 지루한 장마가 길게 이어질 때입니다. 그런 때가 아니고서는 별로 없을 겁니다. 나는 하늘이 좋은 날만 사진을 찍으러 갑니다. 이 때문에 사진을 찍는 날이면 좋은 하늘을 보게 됩니다. 그런 하늘을 볼 때마다 가끔은 옛 생각이 스칩니다. 하지만 그때처럼 하늘이 무심하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종종 하늘이 무심하다는 말이 들립니다. 어떤 때냐 하면 날씨가 안 좋을 때입니다. 특히, 기후변화에 따른 날씨가 재난 상황에 이르게 할 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합니다. 하지만, 하늘이 무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내가 하늘이 무심하다고 생각했을 때, 사실 하늘은 나와 무관했듯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무심한 건 우리 인간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