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에세이/라떼별곡

실수의 미학

훈 작가 2024. 11. 4. 06:00

잘못 찍은 사진입니다. 셔터를 누르는 살짝 순간 흔들렸습니다. 삼각대 다리가 제대로 고정되지 않은 상태였나 봅니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에는 느끼지 못했는데 찍고 나서 LCD 창을 확인해 보니 미세하게 흔들린 흔적이 보였습니다. 사진을 찍다 보면 순간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일입니다. 다시 삼각대를 조금 옮겨 확인한 후 셔터를 눌렀습니다. 확인해 보니 이번엔 흔들리지 않고 제대로 찍혔습니다.
 
출사 장소는 은행나무길로 유명한 괴산군에 있는 문광저수지입니다. 매년 10월 말에서 11월 초사이 가을 풍경을 담으로 몰려드는 인파로 북적이는 곳입니다. 10월의 마지막 날, 새벽 6시 조금 넘어 도착했을 때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습니다. 6시 10분이 조금 지나니까 몰려드는 승용차들로 주차장은 빈 자리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곳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 순간 환상에서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즈넉한 노란 은행나무길 풍경을 찍겠다는 나만의 생각을 버려야 했습니다. 이른 새벽 시간인데도 워낙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모여들었거든요. 대부분 사진 애호가였습니다. 가급적 이미지 속에 사람이 없는 멋진 풍경만 담고 싶은데 찍고 보면 어딘가에 사람의 흔적이 들어가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러려니 하고 찍을 수밖에 없습니다.
 
집에 돌아와 SD카드를 컴퓨터에 꽂고 하나하나 살펴보았습니다. 어차피 보정작업을 거쳐야 하니까요. 그런데 문제의 흔들린 사진을 보고 지우려다 잠시 멈추었습니다. 가만히 보고 있으니 가을 수채화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분명 잘못 찍은 사진이 맞는데도 불구하고 묘하게 감성적인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그간 잘못 찍은 사진은 임의로 삭제해 왔습니다. 이 사진도 그러력고 했습니다. 일부러 흔들어 찍지 않았거든요.

실수로 찍은 사진이 아닌데 아름다워 보이다니. 이게 말이 돼. 사진을 보고 뭔가 뇌리에 스치는 게 있었습니다.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실수로 찍은 사진인데 이렇게 나올 수가 있지.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때론 실수를 통해서 한 수 배우라는 이야긴가. 아니면 실수를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말라는 건가. 모름지기 일상에서 ‘실수’란 단어는 부정적인 의미투성이뿐인데. 그래서 잠시 망설였던 겁니다
 
이태리의 피사의 사탑이 생각납니다. 실수가 나은 미학입니다. 너무 유명한 명소죠. 사실 일부러 그렇게 지은 건축물이 아니잖아요. 실패작이기 때문에 유명해진 건축물이거든요. 역설적이죠. 우리나라 같았으면 난리법석이었을 겁니다. 부실 공사의 오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겁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세금 낭비니, 책임자 처벌이니, 안전관리 소홀이니 하면서 시끄럽지 않은 날이 없었겠죠.
 
이 탑은 원래 충적토로 지반이 약한 곳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기울어졌다고 한다. 공사 초기부터 잘못된 건축물이기에 헐고 다시 지어야 하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공사는 계속되고 가까스로 3개 층이 완성되고 난 후 1, 2차 십자군 전쟁으로 인해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1272년 다시 재건축을 시작할 때 종탑은 더욱 기울어졌으며 1350년 기울어진 채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상태로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걸 보면 미스터리하기 그지 없습니다.
 
주제에서 너무 나갔나요. 어쨌든 실수는 하기 마련입니다. 싫든 좋든. 그러나 실수를 통해 배우기도 하죠. 생각해 보니 사진도 실수의 미학입니다. 실수가 쌓이고 쌓여 조금씩 완성도를 만들어 갑니다. 실수를 바탕으로 나아지는 거죠. 별것 아닌 것 같은 사진을 취미로 하면서 실수의 미학을 새롭게 배웁니다. 삭제해 버리려고 했던 사진을 한참 동안 보았습니다. 여전히 가을 수채화 같은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 알려드립니다. 11월 5일 ~ 12일까지 3번째  단편소설인 <빼빼로데이>를  8회에 매일 걸쳐 연재할 예정입니다.  많이 응원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