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빼로데이 (5)
4시간을 기다려 공연장 안으로 들어갔다. 온통 보랏빛 물결이다. 우리는 FLOOR 석 17구역 3열에 자리 잡고 앉았다. 저녁 7시, BTS가 등장했다. RM이 ‘리듬 탈 준비됐어요?’ 하면서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응원 봉을 높이 흔들어 크게 소리 질렀다. T자 형태의 무대 위로 BTS가 걸어 나오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먼 거리여서 잘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대형 스크린에 나오는 공연 모습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즐거웠다. 우리는 목이 아플 정도로 환호성을 치며 즐겼다, 그들은 하나 같이 똑같은 동작으로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이 정말 환상적이다. BTS는 각자 무대를 누비며 갈증을 마음껏 풀 듯 열창했고, 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아미밤(Army Bomb)과 클래퍼(Clapper)를 좌우로 흔들어 댔다. BTS가 20여 곡을 부르는 동안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몰랐다.
2시간 반에 걸친 공연이 끝났다. 우리는 손을 꼭 잡고 공연장을 빠져나왔다. 혼잡한 인파 속에서 은영이와 나는 손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며 버스정류장까지 걸었다. 주변 사람들과 소음 때문에 무슨 말을 해도 잘 들리지 않았다. 대치동 방향으로 가는 버스가 올 때까지 공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기다렸다. 마치 연인처럼….
승객들이 많아 서서 갈 수밖에 없었다. 은영이가 은마아파트 사거리에서 같이 내리자는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버스가 청담공원 앞 교차로에서 좌회전하자 은영이가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두 손으로 나를 꽉 안았다. 순간 은영이 입술이 내 볼에 살짝 닿았다 떨어졌다. 은영이가 살짝 웃으며 손으로 내 볼에 뭐가 묻었는지 닦아 주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은영이가 내 오른손을 잡고 빵 카페로 이끌었다. 은영이 손에 이끌려 나도 안으로 들어갔다. 계산을 마친 은영이가 카페 라테 2잔, 블루베리 쿠키, 치즈케이크, 루벤 샌드위치를 나무로 된 사각 쟁반에 담아 들고 창가 쪽 테이블로 가 앉았다. 나도 은영이가 들고 있던 아미밤과 클래퍼를 옆에 내려놓으며 앉았다.
“배고프지? 집에 가서 엄마한테 밥 달라고 하지 말고 이걸로 때워.”
“이걸로?”
“부족하면 말해.”
“….”
더 먹자고 하고 싶은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민우야! 넌 어떤 노래가 가장 좋았니?
내가 ‘DNA.’라고 대답하자 은영이가 ‘난 FAKE LOVE.’라며 몸을 조금씩 좌우로 흔들더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널 위해서라면 난 슬퍼도 기쁜 척, 할 수가 있었어./
/널 위해서라면 난 아파도 강한 척, 할 수가 있었어./
/사랑이 사랑만으로 완벽하길, 내 모든 약점은 다 숨겨지길./
/이뤄지지 않는 꿈속에서 피울 수 없는 꽃을 키웠어./
“야, 창피해. 그만해.”
은영이가 멈추었다.
“창피하긴 뭐가 창피해? 그러고 보니 의외로 부끄럼 많이 타네.”
“그게 아니고, 다른 사람들이 우릴 쳐다보잖아.”
“알았어. 그나저나 너, 엄마한테 전화 안 해도 되니?”
“아까 주문할 때 카톡 보냈어.”
“그래.”
“넌?”
“콘서트 보고, 저녁까지 먹고 온다고 했더니 엄마도 가보고 싶다는 거야.”
“엄마도 팬이셔?”
“그런데 아빠가 말도 못 꺼내게 해.”
“왜?”
“그 나이에 애들처럼 무슨 아이돌이냐는 거야.”
“나이와 무슨 관계야.”
“아니, 그게 아니고, 코드가 안 맞아. 아빤 트로트 열혈 팬이시거든.”
“하하하. 그래.”
“그만 일어나자. 오늘 정말 고마웠어. 진심이야.”
“은영아, 우리 친구로 잘 지내자.”
“하하. 당근이지. 그나저나 딴 여자애한테 눈 돌리면 안 돼. 약속할 수 있지”
은영이가 오른손을 뻗어 세끼 손가락을 내민다. 나도 손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