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 작가 2024. 11. 21. 06:00

착각이었습니다. 인간이 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생각이. 숲에 들어오니 그런 생각이 듭니다. 고요와 적막함이 묻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숲이 침묵으로 인간의 언어인 고요와 적막함을 가져와 스스로 돌아보게 하는 건 자연의 힘이라 생각합니다. 나도 모르게 이런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았습니다. 숲에 대한 예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도심의 빌딩 숲과는 정반대 분위기라 익숙하지 않은 탓도 있습니다. 요즘 말하는 힐-링이란 말이 이곳에선 필요 없단 생각이 드는 건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겁니다. 청아한 숲, 맑은 공기와 가을밤 하늘에서 내려온 별빛이 물들게 한 형형색색의 아름다움만으로도 마음은 이미 속세의 나를 벗어던지고 순수한 나를 만나게 합니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냥 걷기만 해도 나는 서정시인이 된 듯합니다. 가만히 있어도 새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풀벌레의 연주소리가 정겹기만 합니다. 홀연 스치는 바람이 내가 밟는 낙엽소리까지 더해 멋진 시라도 읊조리고 싶은데 숲의 일상을 방해할 것 같아 차마 꺼낼 수가 없습니다.

숲에 들어오면 숲에 어울리는 행동를 해야 하잖아요. 말이 필요 없단 뜻입니다. 사람의 방식이 여기선 통할 리가 없을 듯 같아 그저 눈과 마음으로만 숲과 대화를 이어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게 나의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숲을 이루고 사는 가족들이 속세의 우리처럼 아등바등 요란스럽지 않기에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숲은 자연 그 자체이고 속세의 일상과 전혀 다른 세계입니다. 그러니 내가 스스럼없이 숲의 한 일원으로 되어야 숲과의 만남이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여긴 인간이 만든 물리적 공간과는 거리가 너무 다르니까요. 그냥 스치듯 지나가면 숲의 진정한 모습을 알지도 느끼지도 못할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말이 여기선 의미가 없는 듯합니다. 때론 그 반대일 수도 있거든요. 숲만 보지 말고 나무도 봐야 하니까요. 나무 하나하나, 이름 모를 풀까지도 다 개별적인 존재로 어울려 사는 게 숲이니 어느 한 곳으로 치우치면 질서와 조화가 깨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숲은 우리가 말하는 겸손과 질서가 항상 균형을 이루는 공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숲을 이루는 그 어느 것도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지 않거든요. 게다가 키가 크거나 작아도 다 어울려 자연에 순응합니다. 속세의 인간군상과 다르죠. 탐욕으로 서로 아웅다웅 다투는 일이 없으니까요. 여기선 저절로 겸손을 배우게 되는 모양입니다.
 
속세의 세상도 겉으로 보면 서로 의지하고 더불어 사는 곳이죠. 그럼에도 단 하루라도 조용한 날이 없습니다. 숲과는 너무 다릅니다. 권력을 쥐었다고 우쭐대고, 돈이 좀 있다고 거만하고, 남보다 잘났다고 이웃을 무시하려 하고, 내 맘이 들지 않는다고 안하무인처럼 행동하고, 이처럼 인간다움을 잃은 사람이 많습니다.
 
숲엔 그런 게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더불어 살죠. 다툼이 없습니다. 함께 도란도란 지냅니다. 침묵하는 것 같아도 소통하며 지냅니다. 그들만의 언어으로. 갈등이 없으니 아름답습니다. 우리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란 말이 자만(自慢)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숲의 겸손을 배웠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