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에세이/아포리즘

비워 줄 자리

훈 작가 2024. 12. 3. 06:00

가을이 내려놓습니다. 가지마다 걸려있던 삶의 무게를. 가을이 지고 있습니다. 노을진 황혼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지는 낙엽을 보고 가을이 떠난다고 아쉬워합니다. 그런 가을을 보고 우리는 말합니다. 낙엽 지면 낙엽 따라 가을이 진다고.
 
삶에 지쳐 저무는 노을조차 눈길을 주지 않았는데, 어느 날 낙엽이 떠나가는 보고 세월이 빠르다 합니다. 가을이 파르라니 떨고 있을 때, 무심하게 지나치다가도 문득 나를 돌아봅니다. 아, 또 인생의 나이테가 하나 더 느는가 보구나 합니다.
 
가을은 떠나는 것도, 지는 것도 아닙니다. 가을은 오는 것도, 가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가을을 맞이하고, 보내는 것도 아닙니다. 우린 그렇게 한 적이 없습니다. 단 한 번도. 다만, 가을은 여름이 그랬듯이, 그 자리를 비워 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