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에세이/행복, 그대와 춤을

남는 건 사진밖에 없어!

훈 작가 2024. 12. 7. 06:00

 

MZ 세대들 사이에선 인스타그램을 안 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인 모양입니다. 자신의 일상을 동영상, 사진 등을 올리며 소통을 즐깁니다. 단순한 기록부터 이것저것 드러내고 싶은 욕망일지도 모릅니다. 유명한 맛집을 찾고, 이름난 여행지를 소개하고, 눈길을 끌 만한 특이한 장면, 특별한 콘텐츠를 SNS에 올리는 걸 자랑하거나, 남의 것을 보며 즐기고 그들만의 일상을 서로 소통하고 싶은 게 요즘의 흐름인듯 보입니다.
 
은행나무가 곱게 물들 때면 인파로 북적이는 곳이 있습니다. 아산 곡교천입니다. 주말이면 명절 전 시장 골목처럼 붐빕니다. 가족보다 연인으로 보이는 젊은 사람이 많습니다. 모두 추억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심지어 바닥에 떨어진 은행잎에 누워 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번잡한 상황을 피하려면 평일에 올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곡교천 은행나무 길의 멋진 풍경을 담으려면 무조건 주말은 피해야 합니다.

그래서 평일 해뜨기 전 이곳을 찾았습니다. 곡교천 은행나무 단풍은 평년보다 10일 이상 늦은 데다 100% 물들지도 않았습니다. 게다가 듬성듬성 은행잎이 많이 떨어져 풍성한 분위기가 덜 했습니다. 영하에 가까운 차가운 날씨 탓에 손이 시릴 정도로 쌀쌀했습니다. 이른 아침인데 산책하는 사람이 간간이 눈에 띄었고, 카메라를 든 사람도 꽤 있었습니다. 내 마음과 비슷한 사람일 겁니다.
 
우연히 사진동호회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인천에서 왔다더군요. 얼떨결에 그들 틈에 끼어 사진을 찍었습니다. 생각지 않은 연출사진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그중 한 분이 그나마 오늘은 사람이 없어 다행이라면서 사람이 더 오기 전에 서둘렀습니다. 이곳에 많이 와 본 듯 보였습니다. 리더로 보이는 남자의 지시에 따라 연출하는 여자분이 움직였습니다. 삼각대를 놀 만한 자리가 없어 스냅사진으로 찍어야 했습니다. 다 찍은 다음 감사하다는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추억을 담는데 사진 만 한 게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록은 언젠가 기억하려고 남기죠. 단순한 시간의 추억이면 사진을 남기려 하지 않을 겁니다. 아름답고 즐거웠던 순간을 남기고 싶어 사진을 남깁니다. 언젠가 그걸 소환할 때가 있을 겁니다. 그런 추억이 없다면 우울할 겁니다. 왜 나는 그때 그런 추억을 만들지 못했는지. 내겐 그런게 있습니다. 수학여행과 대학시절 졸업여행입니다. 가정형편이었지만 생각하면 지금도 우울합니다.
 
‘남는 건 사진밖에 없어.’ 여행 가면 흔히 하는 말입니다여행의 추억은 단연컨대 사진일겁니다사진에 집착하는 건 이해하고 남습니다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가물가물하거든요그러니 추억을 그때그때 남겨야 하는 겁니다. 그게 사진을 찍는 일반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진을 즐기는 사람은 사진 그 자체가 즐거움이기에 찍으러 다닙니다. 그것이 곧 행복인 거죠. 

곡교천 은행나무길에 찍은 사진을 보고 있습니다. 사진 속 주인공들은 언젠가 이 가을을 기억하며 웃을 겁니다.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가면서 ‘호호, 깔깔’ 대며 기억을 떠올릴 겁니다. 추억이 있는 아름다운 삶이 행복하다는 걸 느끼면서 말이죠. 나이가 들수록 아름다운 추억이 많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남는 건 사진밖에 없어’
 
하지만 이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사진만 남는 게 아닙니다. 추억까지 남습니다. 먼 훗날 그기록이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사진만 남는다면 굳이 사진을 찍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 속에 담긴 추억이 바로 행복이기 때문에 사진을 찍는 겁니다. 다만, 컴퓨터에 저장한 채 숙성만 시키지 말고 꺼내보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게 중요합니다. 잊지마세요. 작은 행복이 거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