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콘텐츠는?
어린 꼬마 쌍둥이를 만났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도 모르게 앙증스러운 모습을 보고 아빠에게 말을 건넸다.
“나중에 얘네들 어떻게 시집보내요. 눈물 나와서 못 보낼 것 같은데.”
“….”
부부는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올라가세요.” 그들이 인사를 하며 두 요정을 데리고 내렸다. 나는 문이 닫힐 때까지 쌍둥이 천사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그때부터 상상의 나래가 날아다녔다. 소녀가 되고 사춘기가 되면 이성에 눈을 뜰 텐데 연애는 어떻게 할까? 요즘 아이들은 빠르다던데. 녀석들이 남자를 사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성장기 아이들의 로맨틱한 사랑을 콘텐츠로 글을 써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세 번째 단편 소설인 「빼빼로데이」를 집필하게 된 출발점이다.
문제는 내가 그런 경험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요즘 사춘기 또래 아이들이 어떤지도 알 수 없다. 가끔 손을 잡고 다니는 모습을 보긴 했어도 관심이 없었다. 듣기로는 입맞춤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 하고, 심지어 성 경험까지 하는 아이들도 있다고 하는데, 얼마나 요즘 시대에 맞게 쓸 수 있을까, 솔직히 걱정이 앞섰다.
고민 끝에 나는 주인공 민우가 되기로 했다. 나이 60 중반에 중학교 2학년 학생이 되어야 하는데, 과연 할 수 있을까. 1970년대와 지금은 다르지 않은가. 달라도 정말 너무 다르다. 어린 남녀 학생들이 사귀는 걸 그 당시 어른들은 이마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하면서 혀를 차며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쓰고 싶었다. 그러면서 첫사랑이란 단어를 떠올려 보았다. 생각만 해도 설레었다. 어렵게 주인공이 어떤 인물인지 설정을 하느니 내가 중학생 시절로 돌아가 시간여행을 즐기는 게 좋을 듯싶었다. 그래서 주저하지 않고 작품 속으로 날 밀어 넣었다. 소설을 쓰는 동안 난 민우가 되어 로맨틱한 데이트을 즐겼다.
「빼빼로데이」가 언제부터 아이들의 문화로 자리매김했는지 나는 모른다. 아는 게 이상하다. 직장 다닐 때 11월 11일이면 사무실 책상 위에 빼빼로 과자가 놓여 있곤 했었다. 여직원에게 뭐냐고 물어보니 청소년들의 ‘밸런타인데이’라 생각하면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요즘 애들은 첫사랑에 일찍 눈을 뜨는 듯하다. 참 시대가 많이 변하긴 했다.
첫사랑은 미완의 사랑일 가능성이 크다. 아파트 쌍둥이 요정도 언젠가는 첫사랑이란 홍역을 앓을 것이다. 나중에 요정들의 커서 어떤 사랑을 그려나갈지 모르지만, 아름다운 사랑을 했으면 좋겠다. 같은 동에 사는 요정들이 생각난다. 요정들 덕분에 쓰게 된 단편소설「빼빼로데이」는 두말할 것도 없이 2024년 나의 콘텐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