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에세이/라떼별곡

을사년의 소망

훈 작가 2025. 1. 1. 00:00

을씨년스럽다는 말이 떠오르는 을사년이 밝았습니다. 1905년 이후로 또다시 몹시 쓸쓸하고 어수선한 을사년을 맞았습니다. 계엄과 탄핵 정국으로 이어지는 새해도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속에 맞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우울합니다. 축복 속에 희망을 노래하며 새해를 맞아야 하는데, 우울한 건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닐 듯합니다.
 
그리스 신화에 보면 프로메테우스가 하늘에서 불을 훔쳐서 인간에게 갖다 줍니다. 화가 난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와 인간을 벌을 내리기로 마음먹고 미모의 여인 판도라에게 상자 하나를 들려 인간 세계에 내려보냅니다. 제우스는 판도라에게 “수명이 다할 때까지 그 상자를 절대 열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상에 내려와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의 아내가 된 판도라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가 몰래 상자를 열었습니다. 그 순간 온갖 재앙과 질병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얼른 상자 뚜껑을 닫았으나 이미 상자 속의 모든 것들이 이미 다 날아가고 한 가지만 남았다고 합니다. 그게 ‘엘피스’(ελπι&), 희망입니다.

새해 첫날, 누구나 희망을 가슴에 품고 소원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우린 그렇게 새해를 시작합니다. ‘희망’ 찬 새해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적어도 실망이란 단어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희망은 우리에게 힘이 되어 줍니다. 꿈을 향해 날아갈 수 있는 날개가 되어 줍니다. 삶의 의지를 북돋아 주고 용기를 갖게 합니다.
 
그런데 희망을 누구나 갖는 게 모순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상식적으로 보면 희망은 긍정적이고 좋은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하지만 희망도 나쁜 사람이 품게 되면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불법적인 방법으로 온갖 이런저런 범죄를 저지르고도 끝까지 무죄였으면 하고 변호사를 통해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희망이란 단어가 누구나 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것처럼 세상은 평등하지도,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습니다. 오래전부터 점점 희망 없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는 걸 우린 보아왔습니다. 가진 자들이 ‘유전무죄, 내로남불’ 같은 말로 보통 사람들의 상식을 무너뜨렸기 때문입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 나는 이 문장을 정말 좋아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권력 있고, 돈 많고, 비도덕적인 자들이 득세하는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약자(서민)들은 소외되었습니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희망’을 '실망'으로 만들며 우릴 기만했습니다.
 
꼭 탄핵 심판을 받아야 하는 자도, 권력이나 돈을 쥐고 벌 받아야만 자도 희망을 품고 있을 겁니다. 기각이나 무죄를. 신이여! 바라옵건대 적어도 이런 자들에게는 희망을 주지마소서. 그래야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가 될 겁니다. 차라리 그들의 사전엔 아예 희망이란 단어를 삭제시켰으면 좋겠습니다.
 
바라건대 희망이 보통 사람을 속이는 헛된 꿈이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셰익스피어는 말했습니다. “불행 속에서도 단지 희망만은 치료제로서 남아 있다.” 졸지에 우리는 불행한 나라가 되었고, 불행한 국민이 되었습니다. 국민 노릇하기 너무 힘듭니다. 셰익스피어 말처럼 희망이 우리들 마음의 치료제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