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 작가 2025. 1. 6. 00:00

프롬(Flam)은 ‘송네 피오르의 심장’으로 불리는 작은 마을이다. 인구는 500여명에 불과한데 연간 관광객은 500,000명이나 찾는 곳이다. 대부분 ‘Flamsbana’ 부르는 산악철도를 이용하려는 관광객들이다. 기차는 “오슬로~베르겐”을 잇는 철도의 중간 기착지인 해발 866m 고산역 ‘뮈르달’까지 20km 구간을 1시간씩 왕복을 한다.

프롬산악철도는 터널 20곳에 최대 경사가 55도나 된다. 1923년부터 약 17년간 험한 산을 깎고 철도를 깔아 ‘프롬’에서 ‘뮈르달’까지 11개의 역이 만들어졌다. 자연과 가장 가깝게 만든 열차로 최고시속 40km 정도 밖에 안되지만, 소박한 객실 창 너머로 펼쳐지는 노르웨이의 자연풍경은 한순간도 놓칠 수가 없는 곳이다.

‘프롬열차’의 하이라이트는 해발 670m 전망대에 있는 ‘효스포센’ 폭포다. 여기서 5분 정도 정차한다. 전망대에서 내린 여행객들은 흰 물보라를 시원하게 내려오는 폭포를 감상한다. 특히 폭포 멀리 오른쪽에서 노르웨이 전통 복장을 한 요정이 나타나 음악과 함께 아름다운 춤을 추고 사라지는 감동적인 퍼포먼스는 이국적인 경험이다.

열차는 해발 2m인 ‘프롬역’을 출발해 해발 865m의 ‘뮈르달역’까지 11개의 역과 20개의 터널을 거쳐 20km를 달린다. 애당초 이 철도는 산악 지역 주민들을 위해 건설된 철도로 노르웨이 국영 철도 회사에서 1924년 착공하여 16년 후인 1940년에 완공했다. 1941년부터 본격적으로 운행을 시작했는데 이후 1944년에 전 구간이 전철로 바뀌었다.

우리 일행은 다른 여행객보다 일찍 프롬에 도착했다. 텅 빈 주차장을 보니 우리가 타고 온 버스뿐이다. 인솔자와 가이드가 역으로 들어가 열차표를 매입하러 간 사이에 잠시 주변을 둘러봤다. 50분 정도를 달려온 지금 시간은 오전 7시 20분이다. 열차가 양 플랫 홈에 각 1대씩 서 있고 그사이에 쇠사슬을 막아 놓았다.

우리가 탈 열차가 첫 열차(07:30)인 것 같다. 그사이 빨간색 버스가 주차장에 들어왔다. 두 번째 버스다. 여행객 옷차림이 우리와 비슷하다. 화려한 아웃-도어와 얼굴 모습이 그랬다. 입에서 나오는 언어가 귀에 익숙했다. 한국인 관광객으로 대부분 여성이다. 우리 일행은 열차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나도 아내에게 위치를 정해주고 앵글에 구도를 잡았다. “찰칵”. 아내가 다시 포즈를 취하더니 한 장 더 찍으라 한다. 한 장 더 찍고 ‘프롬역’으로 가 보았다. 역 바로 앞이 선착장이자, 부두다. 페리선 한 척이 정박해 있었고 건너편에도 작은 유람선이 떠 있었다. ‘프롬’에 도착하기 바로 전 버스에서 본 호화 크루즈 선이 생각났다.

크루즈 선이 바로 ‘프롬’ 역까지 들어올 수 있어 여행객들이 내리면 ‘프롬 투어’가 가능한 것이다. 이윽고 흰색 옷을 입은 역 직원이 출입을 막고 있던 쇠사슬을 걷어 올렸다. 인솔자가 오더니 지정된 객실에 지정된 좌석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한다. 단체관광에 따른 질서유지 때문인 모양이다.

객차의 할당된 공간 반 정도가 우리 일행이다. 나머지 객실의 반도 두 번째로 들어온 한국인 단체여행객이다. 첫 열차라 그런지 만석이 된 것 같지 않았다. 객실 안이 수다로 조금 시끄럽다. 수학여행 가는 열차 안이 이런 분위기일지도 모르겠다. 여행의 즐거움이 객실 안에 퍼지면서 출발 안내 방송이 나왔다.

그런데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어느 곳이 경치가 좋은 쪽인지 그것이 문제였다. 열차가 플랫 홈을 벗어났다. 서서히 빠져나가면서 모든 시선이 차창 밖으로 향한다. 열차는 생각보다 느리다. 속도제어 장치를 해 놓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우선 이 열차는 산악열차이자 관광열차다. 빨라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속도가 시속 40km로 느린 것도 있지만, 철길이 산허리를 타고 도는 구간이 많아 속도도 한계가 있고 1km 주행당 55m씩 올라가는 급경사라 빨리 달릴수 없다. ‘프롬’에서 ‘뮈르달’까지 거리는 20km에 불과하지만, 고도 차이가 863m나 되는데다 노선이 단선(單線)이다. 유일하게 상행과 하행 열차가 서로 바꾸는 역은 중간에 ‘베레크밤’ 역 뿐이다.

‘프롬’ 노선은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철도 중 하나다.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노르웨이만의 멋진 자연 절경을 따라 협곡과 터널이 이어진다. 두더지 굴처럼 터널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열차 밖으로 펼쳐지는 경치가 환상적이었다. 객실 차창 너머 산등성이에서 하얀 아침 햇살이 날아 든다.

제일 먼저 환호와 탄성이 터지게 한 것은 폭포였다. 아내와 내가 앉은 좌석이 아니라 오른쪽 좌석 쪽에서 깜짝 등장했다. 제법 폭포다운 자태를 뽐내며 “짠”하고 여행객을 맞이한다. 너나 할 것 없이 오른쪽으로 시선이 쏠리면서 비경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하지만, 넓은 객실 차창 덕에 억지로 머리를 들이댈 필요는 없었다.

우리나라 깊은 산속에서 볼 수 있는 폭포보다 표고차가 크고 떨어지는 수량도 많다. 눈이 호강한다. 쏟아지는 물이 정말 시원하게 아래로 떨어진다. 나는 한쪽에 비어 있는 객실의 가운데 쪽으로 가 차창에 기대어 카메라를 들었다. 셔터를 누르고 다시 찍으려고 자세를 고쳐 잡는 사이에 열차가 터널로 쑥 들어가 버렸다.

터널을 통과하니 상황이 역전된다. 이번에는 왼쪽에서 탄성이 터졌다. 좌우에서 정신을 빼앗아 간다. 이쪽도 저쪽도 다 보려는 사람의 욕심은 똑같다. 우리는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며 환호에 이끌려 마법에 취해 버렸다. 모두 철이 든 어른이 아니라 순진한 어린이가 되어 버린 듯하다. 폭포가 줄줄이 사탕처럼 즐겁게 한다.

폭포는 거기서 거기인데 시선을 참을 수 없게 한다. 한순간도 놓치기 싫다. 참을 수 없는 설렘을 자극하는 비경들이 좌우에서 여행객의 마음을 마구 흔들었다. 손담비의 유일한 히트곡(내가 알기로는) “미-쳤어”♪ “미-쳤어”♪의 리듬에 빠져든 것 같다. 내가 보기에도 지극히 당연한 여행을 달콤한 맛이다.

그런 흥분을 진정시키는 역할을 터널이 하고 있다. 열기가 과열되면 사고가 나니 그 타임에 맞추어 터널이 나타난다. 기막힌 연출이다. 열차는 구불구불 장엄한 산등성이 허리를 감고 돌고 돌아 계속 올라가고 있고, 폭포는 햇과일처럼 주렁주렁 걸려 있다. 폭포 위로는 하얀 눈이 덮고 있는 산풍경이 이국적이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다고 증명이라도 하듯 열차는 거북이처럼 기어 오르고 있다. 협곡이 만든 계곡, 그 사이를 흐르는 시냇물, 옹기종기 오붓하게 모여 있는 예쁜 집들이 어우러져 있는 풍경은 그림같다. 난 그게 부러웠다. 보기만 해도 힐-링이다. 노르웨이의 비경은 찌든 스트레스를 한 순간 잊게 만들었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풍경이 눈에 익숙해질 무렵 안내 방송이 흘러 나왔다. 영어가 짧은 탓에 벌써 다 왔나 싶었다. 인솔자가 잠시 5분간 정차를 알리는 방송이라 알려고 주었다. ‘효스 폭포’가 있는 곳이란다. 열차가 서서히 멈추면서 오른쪽에 한 줄기 시원한 폭포가 나타났다. 우리는 내리자마자 두 팔을 벌리고 환호했다.


중년의 여자들이 10대 소녀 팬이 되어 K-pop 스타를 만난 듯한 표정들이다. 폭포가 1%라도 불만이 있으면 “이야기해 봐?” 하고 우리를 향해 퍼포먼스를 펼치는 듯 시원하게 곡선을 그리며 흘러내린다. 쌓였던 모든 게 뻥 뚫리는 기분이다. 여기선 스트레스가 존재할 수가 없다.'효스폭포’가 'Welcome' 하며 환영하듯 우리를 맞이했다.

폭포는 ‘프롬’ 노선 중에서도 가장 절경이다. ‘프롬역’에서 15.6km, 해발 699m에 위치에 있다. 빙하의 압력으로 깎아놓은 U자형 계곡 위에서 떨어지는 폭포의 높이가 93m나 된다. 마치 용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도 같고, 하얀 산신령이 스키를 타고 내려오는 것도 같다. 그나저나 노르웨이에 산신령이 있을까?

어쨌거나 멋있다는 말이다. 폭포에 대한 표현이 어떠하든 ‘효스폭포’는 ‘프롬열차’의 화룡점정인 건 확실하다. 계곡물은 정말 새파랗다 못해 새하얗다. 폭포 속으로 금방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급류가 쏜살같이 미끄러져 내달린다. 자세히 폭포를 보니 폭포 중간 언덕 오른쪽에 오두막 같은 집이 한 채가 보인다.

바로 그 순간 호리는 듯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러더니 빨간 옷을 입은 요정이 나타나 우릴 보고 손을 흔든다. 그리고 바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여행객을 위한 퍼포먼스였다. 요정이 춤추며 “날 따라오면 안 잡아먹지” 하는 것 같다. 마치 깊은 산속에서 만난 천년 묶은 구미호처럼 여행객을 유혹한다.

열차가 다시 출발했다. ‘효스폭포’ 위에 풍경이 어떤 모습일까? 산 정상에 있는 만년설이 녹아 ‘레이눙가’ 호수를 이루고, 이 호수의 물이 넘쳐 폭포를 만든다고 한다. 드디어 해발 863m ‘뮈르달’(Myrdal) 역에 도착했다. ‘프롬역’ 역에서 출발할 때는 봄이었는데, 도착하니 초록의 숲은 없고 자작나무만 무성한 겨울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