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살과 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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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에 검게 그을린 할머니 주름살이 세월의 나잇살처럼 그려져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게 아닙니다. 그 주름살은 산골짜기 밭이랑과 밭고랑을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생긴 겁니다. 스무 살 시집올 무렵부터니까, 까마득히 오랜 세월 동안 새겨진 인생 여정의 기록이자 희로애락이 담긴 인생드라마입니다.
모진 세월의 풍파를 이겨내고 거친 손으로 농사일 일구면서 자식 농사까지 다 키워낸 인생 역정의 기록이 바로 주름살입니다. 밭이랑과 밭고랑을 오가면서 농작물을 키우듯 그 땀과 그 한으로 5남매 자식들을 학교 보내고 어엿하게 결혼까지 시켜 이젠 손주까지 본 할머니, 그 주름살엔 헤아릴 수 없는 눈물과 헛웃음과 담겨 있습니다.
주름살 같은 겨울 밭을 보면 행복합니다. 하얗게 서리가 내려앉은 겨울 밭이랑만큼이나 머리, 이제 반백이 된 할머니, 돌아보고 싶지 않은 세월이 미워집니다. 청춘을 빼앗아 간 세월처럼 겨울 텃밭도 미워집니다. 농사짓는 일이라는 게 이젠 예전 같지 않거든요. 몸도 성하지 않고 마음도 허전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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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겨울 텃밭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삶의 보람이 느껴지곤 합니다. 밭이랑과 밭고랑마다 정성을 쏟아부은 덕분에 주름살은 늘긴 했지만, 이 텃밭이 자신의 삶을 지켜 준 것 같거든요. 땅은 절대 땀을 배신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동트기 전이면 밤새 별일이 없었는지 자식처럼 애지중지했던 농작물을 보면 그게 바로 행복이었죠.
그런데 나이 들면 싫어하죠. 주름살이 보기 싫은 겁니다. 젊어 보이고 싶은 욕망 때문이죠. 늙는다는 건 어쩔 수 없는데 주름살을 없애려고 야단들이죠. 이름난 성형외과마다 주름살을 지우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다고 하거든요. 그렇다고 세월이 인간의 욕망을 모른 척하고 눈감아 주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그런 말 있잖아요. 나이 들수록 탐욕은 비우고, 영혼은 채워야 한다고. 속담에 ‘늙은 말이 더 달라고 한다.’ 것처럼. 그러다 보면 얼굴에 주름살이 아니라, 마음의 주름살이 늘어날 겁니다. 주름을 펴던 지우던 개인의 자유지만, 그건 부질없는 탐욕이죠. 늙어 갈수록 얼굴이 더 추하게 변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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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란 껍질은 그렇게 한다고 지켜질까요. 차라리 그런 정성으로 마음의 주름살이 생기지 않도록 영혼을 다스리는 게 나을 겁니다. 그러려면 마음의 텃밭을 가꾸어야죠. 그런 삶이 훨씬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입니다. 할머니가 텃밭을 가꾸어 온 것처럼 나이 들면 외모(얼굴)가 아니라 마음을 가꾸어야 합니다.
할머니가 가꾸었던 텃밭, 잘 정돈된 밭이랑과 밭고랑이 주름살처럼 보였던 이유는 별거 없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주름살은 나무의 나이테와 같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생명 속에 깃든 영혼이 있느냐 없느냐 차이죠. 그게 다릅니다. 생물학적 노화에 따른 얼굴의 주름은 불가피하거든요. 없애려는 건 어디까지나 욕망이죠.
나이 들수록 중요한 건 젊게 보이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꼰대처럼 보이지 않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꼰대보다 어르신으로 대접받으려면 주름살이 인생 계급장이 아니라 연륜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륜은 외모가 아닙니다. 오랫동안 경험을 바탕으로 쌓은 지혜죠. 마음의 텃밭에서 그걸 더 발전시키고 가꾸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