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에세이/라떼별곡

눈사람 만들기

훈 작가 2025. 2. 12. 00:00

눈이 오는 날이면 아이들은 설렙니다. 눈을 만나러 가고 싶은 거죠. 아빠나 엄마를 보고 보챕니다. 같이 나가 놀자고. 어른들은 마지못해 따라나서죠.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보며 좋은 아빠나 엄마가 되려면 어쩔 수 없죠. 그러나 마음 내키지 않으면 핑곗거리를 찾습니다. 그런 아빠나 엄마를 보면 아이들은 실망합니다. 그러니 싫어도 못 이기는 척하고 따라나서야 하는 게 요즘 부모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눈을 뭉칩니다. 그런데 눈이 잘 뭉쳐지지 않습니다. 계속 반복해도 내 마음 같지 않습니다. 털장갑에 눈만 묻어 있을 뿐입니다. 다급한 나머지 엄마나 아빠를 부릅니다. 눈을 모아 꼭꼭 눌러 주먹만 하게 만들어 준 눈 뭉치를 굴려 시범을 보여 줍니다. 아이는 그걸로 눈밭에 굴려 눈덩이를 만듭니다. 굴리면 굴릴수록 점점 커집니다. 어느새 축구공, 농구공처럼 커집니다. 신기한 나머지 엄마 아빠를 큰 소리로 부릅니다. 
 
아빠가 만든 큰 눈 뭉치를 아래에, 아이들이 만든 작은 위에 올립니다. 그리고 나뭇가지를 꺾어 눈, 코, 입을 붙이면 눈사람이 완성됩니다. 아이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죠. 아이들은 배웁니다. 포기하지 않고 작은 눈 뭉치를 굴리면 큰 눈덩이가 되는 단순한 이 작업을 통해. 스스로 노력을 기울여 만든 눈사람을 보며 작은 성취감을 느끼는 거죠. 눈사람을 스마트 폰으로 인증사진을 남깁니다. 눈이 오는 날 공원에서 본 요즘 젊은 엄마나 아빠들의 모습입니다.

어릴 적 불렀던 동요가 생각납니다.
 
/한겨울의 밀짚모자, 꼬마 눈사람/
/눈썹이 우습구나, 코도 삐뚤고/
/거울을 보여 줄까, 꼬마 눈사람/
 
그 시절엔 아이들뿐이었습니다. 어른들이 아이들 노는 데 끼어드는 일이 없었죠. 털장갑도 귀했습니다. 그냥 맨손으로 눈사람을 만들었죠. 손이 시려도 '호호' 입김을 불어가며 눈사람을 만들었습니다. 단순한 겨울 놀이를 넘어 추위를 견뎌내는 일종의 체력을 단련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또래 친구끼리 어울려 눈 오는 날 놀았습니다. 요즘처럼 애지중지 품안에서만 아이들을 키우지 않았죠
 
아이와 함께 눈사람을 만드는 모습이 정겨워 보입니다. 사진 속의 아이가 어른이 되면 기억할 겁니다. 눈사람을 만들었던 겨울의 추억을. 그리고 그 아이가 아빠가 되면 그 추억을 고스란히 자신의 아이에게 만들어 줄 겁니다. 그런 추억이 없어서인지 내겐 사진 속의 주인공들이 아름다워 보입니다. 춥다고 게임이나 하고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아이와 함께 눈사람을 만들며 보내는 게 아이들의 정서나 교육적인 면에서도 훨씬 나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