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 작가 2025. 3. 21. 00:00

엔텔로프 캐니언의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홀슈밴드 주차장에 도착했다. 불과 5분 정도나 달렸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척박한 사막 한가운데 여행객들이 몰고 온 승용차가 보였다. 버스에서 내리니 언덕 위에 정자 하나가 보인다. 그쪽으로 많은 사람이 줄지어 올라가는 것을 보니 그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이콥(가이드)이 앞장선다. 터벅터벅 걸음을 옮길 때마다 땅바닥에서 먼지가 뽀얗게 피어올랐다. 다행히 짙은 구름 때문에 뜨거운 태양은 피할 수 있었다. 구름이 없었더라면 사막 특유의 이글거리는 태양이 반갑지 않게 여행객들을 격하게 환영했을 것이다. 다행이다 싶었다.

그래도 사막은 사막이다. 뜨거운 태양은 피했어도 찌는 듯한 날씨가 장난이 아니다. 정자가 보이는 곳까지만 걸으면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다시 내려가는 길이 아래쪽으로 계속 이어져 있다. 얼마나 걸었을까. 저만치 사람들이 보이는 걸 보니 다 왔나 보다. 시계를 보니 족히 15분 정도 걸었다.
 
이름 그대로 말발굽 모양 협곡이다. 콜로라도강이 270도 굽어 깎은 암벽 모양이 마치 말발굽을 닮았다고 해서 홀스슈 밴드라 이름이 붙였다. 홀스슈 밴드는 짧게 홀슈 밴드라고 부르고 있는데, 홀슈 밴드는 앤텔로프캐니언과 가까운 곳에 있다. 미 서부 애리조나주 페이지(Page)라는 도시에 있다.

홀슈 밴드(Horseshose Band)를 본 순간 떠오른 곳이 있다. 강원도 영월에 있는 한반도 마을이다. 강물이 휘감고 돌아가는 풍경은 비슷하다. 분위기만 다를 뿐이다. 여긴 사막이고 콜로라도강물이 휘감고 돌아가며 만든 협곡이다. 아래쪽을 보니 나도 모르게 오금이 저린다. 보기만해도 아찔한 낭떠러지다.
 
인터넷에서 검색했을 때는 이곳에 난간이 없었다. 막상 와 보니 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제이 콥 설명에 따르면 불과 3개월 전 만 해도 없었단다. 난간이 설치된 이유는 이곳에 여행을 온 멕시코 신혼부부가 기념사진을 찍다가 그만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사망사고가 있었고, 사고가 나자마자 바로 난간이 설치했다고 한다.

난간이 설치되어 있어서 절벽까지 접근이 쉬웠다. 그러나 사진 찍는 게 난감했다. Crop-body 카메라이기 때문에 화각이 좁은 탓이다. 하는 수 없이 두 손을 높이 들어 대충 찍었다. 전체 풍경이 앵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전체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Full-body 카메라가 아니라 애를 먹었다.
 
인터넷에서 본 이미지와 다르다. 여행은 오감으로 느껴야 실감 난다. 아무리 사진이 아름다워도 그건 어디까지나 사진이다. 현장감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 평면적인 아름다움은 입체감을 살릴 수 없다. 그럴지라도 사진으로 남겨야 한다. 여행이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오감으로 느낀 경험을 기행문으로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콜로라도강물이 영겁의 세월을 굽이쳐 흐르는 동안 얼마나 많은 인고(忍苦)의 여정이 이곳을 흐르며 지나갔을까. 흔히, 세월을 흐르는 강물에 많이 비유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월을 흐르는 강물에 비유하는 이유는 난 알지 못한다. 흐르는 강물은 항상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행운유수(行雲流水)같은 세월, 그대로인 것 같은 삶이지만, 세월은 늘 소리없이 변화를 이어왔다. 우린 그런 세월속에 희로애락을 느끼며 알게 모르게 삶을 짊어지고 간다. 다만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 묻혀 흘러가는 세월은 보이지 않는다. 그걸 자연의 변화를 통해서 느낄 뿐이다. 여행은 그런 변화를 되돌아 보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