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 시장
타임머신을 타고 2~30년 전 과거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그 시절의 시장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맑은데 작열하는 태양은 여행자를 괴롭힌다. 오전 11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다. 아직은 시장 특유의 열기가 보이지 않는다. 난 구름과 하늘색이 아름다워 셔터부터 눌렀다. 아주 오래전 보았던 여름 하늘이다.
가이드가 우리 일행을 허름한 천막이 쳐진 주스 가게로 안내했다. 탁자도 그렇고 의자도 낡았다. 일행이 모두 자리에 앉자 망고 주스가 나왔다. 한 모금 마셔 보니 시원하고 달콤했다. 방금 갈아 만든 주스라서 신선함이 느껴졌다. 주스를 마시면서 주변을 살펴보았다. 7~80년대 우리나라 재래시장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가이드가 시장 구경하는 방법과 쇼핑에 대한 요령도 간단하게 설명했다. 가운데 원형 건물은 주로 현지인의 일상생활용품,, 의류, 장난감, 기념품, 공예품 등을 판매하는 곳이란다. 혹시 가족과 친구들을 위한 선물을 쇼핑하고 싶다면 가격 흥정할 때 먼저 50% 깎아 달라는 말부터 하란다.
왼쪽 상가는 신선한 해산물부터 건어물까지 취급한단다. 시장에서 판매되는 해산물은 홍어, 송어, 오징어, 갑오징어, 새우, 게, 꽃게 등 매우 다양하며, 이곳 특유의 양념이 된 건어물도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있는데 식품 위생 관점에서 탈 날 우려가 있으니 사 먹지는 말라고 덧붙였다.
설명이 끝나자 우리는 뿔뿔이 흩어져 구경에 나섰다. 시장 분위기가 오래전 우리 재래시장을 보는 것 같아 소박함이 느껴졌다. 한편으론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구경 나섰던 기억도 떠올리게 했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멈추어 뭔가를 보면 적극적으로 다기와 서투른 한국말로 우릴 부른다. 시장은 어딜 가나 똑같다.
베트남 화폐 단위는 동이다. 우리 돈으로 5,000원이 100,000동이다. 단위가 크다 보니 물가가 비싸 보인다. 뭔가를 사려면 머릿속으로 계산해야 한다. 그런데 막상 계산해 보면 비싸지가 않다. 다만 비싼 것처럼 느껴져 멈칫하게 만든다. 숫자 감각이 빠르지 않은 탓에 한화로 얼마인가? 계산하려면 머리가 아프다.
왼쪽으로 돌아 원형 건물 뒤로 가 보았다. 다양한 채소류가 마치 김장철 시장처럼 즐비하게 쌓여 있다. 천막 아래 상인들 표정이 어린 시절 시골 아주머니를 연상케 했다. 억척스러운 그 옛날의 어머님 모습이다. 까맣게 탄 피부, 주름진 얼굴, 작은 체구에 다부진 표정 그 모든 것이 내겐 그렇게 보였다.
채소 시장을 돌아 원형 건물 뒤로 갔다. 기념품과 공예품 가게가 보였다. 안으로 들어갔다. 오른쪽에 화장실이 보였다. 그런데 좀 특이하다.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간다. 게다가 유료화장실이다. 1인당 5,000동을 내야 한다. 그 맞은편 기념품 가게 앞에 기념품을 사려는 서양 관광객이 보였다.
그곳을 지나 2층에 올라가 보았다. 매장마다 의류만 보인다. 살 것도 아닌데 구경하다 보면 손님인 줄 알고 다가오는 주인들에게 미안해 발길을 돌렸다. 원형 건물을 나와 오른쪽으로 돌았다. 그때 눈에 띄는 영문 표기가 보였다. ‘LEE KANG IN’이라고 새겨진 축구 유니폼이다. 한류열풍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지나다 보니 블랙핑크 제니가 좋아한다는 카피바라 인형도 보였다. 우리는 쇼핑은 이미 쉐라톤 호텔 인근에 있는 롯데마트에서 다 했기에 눈요기만 할 뿐이다. 지나다 보면 ‘한 개에 7만 동’이라며 한국말을 하는 현지 상인에게 ‘5만 동’이라 흥정하는 한국인 관광객도 볼 수 있었다. 그만큼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는 얘기다.
어떤 시장이든 시장 구경은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걷다 보면 힘들어서 할 수 없다. 어쩌면 이곳 담 시장은 가성비를 추구하는 한국인에겐 한국처럼 친근하게 느껴지는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 그래서 계획 없이 왔다 만족스럽게 쇼핑하는 관광객이 많은가 보다. 그래서 생긴 말이 또트랑한다는 말이 이래서 나오지 않았나 싶다.
시장 구경은 여기까지다. 눈요기로만 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본 느낌이 들긴 했지만 어떤 시장이든 활기가 넘친다. 다만 너무 일찍 구경을 온 탓에 그런 열기를 느끼지 못했다. 서민들의 애환과 삶의 진솔한 모습을 보지 못한 시장 구경이지만 스치듯 지나간 오랜 추억이 그립다. 추억을 먹고사는 나이가 되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