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에 있는 화홍문(華虹門)입니다. 수원화성의 북 수문이며 남북으로 흐르는 수원천의 범람을 막아 주는 동시에 방어적 기능까지 갖추고 있는 화강암으로 쌓은 다리 위에 지은 문이다. 7개의 아치형 홍예문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누각으로 지어져 있으며 누각의 건축면적은 52.89㎡입니다.
누상에 오를 때에는 좌·우 측면에 있는 돌계단으로 오를 수 있습니다. 7개의 홍예문 중에 가운데 한 개 만이 높이와 폭이 크고 나머지는 모두 같습니다. 수문의 바깥쪽에는 쇠창문을 설치하여 적의 침투를 차단했다고 합니다. 화홍문 오른쪽으로 방화수류정과 연못(용연)이 있어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합니다.
화홍문은 7개의 수문을 통하여 많은 물이 흘러내리는 물보라를 일으키는데, 그 모습이 마치 무지개 같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입니다. 그래서 무지개 홍(虹) 자를 씁니다. 그래서 화홍문을 수원 8경 중에 하나로 꼽는다고 합니다. 잘 알다시피 수원 화성은 비운의 사도세자 아들인 정조의 지극한 효심이 서려 있는 곳이죠.

1762년 쌀뒤주 속에서 죽어간 사도세자는 당쟁의 희생양으로 아버지 영조에 의해 27세 젊은 나이에 죽었습니다. 비운의 사도세자를 아버지와 가슴 아프게 사별한 아들 정조는 아버지에 대한 정이 남달랐고 할아버지 영조에 의해 손자가 세자가 되어 훗날 조선의 22대 임금이 됩니다.
정조는 등극 후 아버지를 장조라 추존하여 수원에 융릉(사도세자 무덤)을 만들었고 그 이후 수원은 효의 도시로 남아 정조가 남긴 많은 이야기와 유적들이 애끓는 사부곡으로 남아 있는 수원 화성입니다. 누가 설계를 했나?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화성은 정약용이 설계하여 2년 9개월에 걸쳐 축조되었다고 하네요.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화성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나 봅니다. 그만 큼 명소였다는 이야기죠. 왜냐하면 대한제국 시절에 발행된 1원권 지폐 화홍문이 화폐도안으로 등장했으니까요. 당시에 판매됐던 성냥갑 같은 상업용품에도 실릴 만큼 화홍문은 큰 주목을 받았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를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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