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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슬입니다

by 훈 작가 2023. 7. 6.

나는 소리 없이 왔다가 흔적 없이 사라집니다. 잠시 머물렀다가는 삶입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잠시라는 말도 의미가 없습니다. 그만큼 짧게 살다 갑니다. 얼마나 살다 가느냐고요. 하루살이보다도 짧습니다. 이슬처럼 사라진다는 말처럼 그렇게 살다 갑니다. 기껏해야 몇 시간에 불과하니까요. 도대체 누구길래 그렇게 짧게 살다 가느냐고요. 

이미, 눈치챘을 겁니다. 나는 아침이슬입니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나의 짧은 삶에 대해 애석하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아침 햇살이 퍼지면서 생명이 빠르게 짧아지거든요. 게다가 나는 하루살이처럼 내일 없는 삶을 살다 갑니다. 더 안타까운 건 애당초부터 희망이 없는 삶을 산다는 사실입니다. 

그래도 나는 누구보다도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다 갑니다. 짧은 만큼 소중한 시간을 결코 헛되게 보내지 않습니다. 아침햇살이 내 삶을 죽음으로 몰고 가지만 나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미워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햇살을 반기면서 맑고 영롱한 은구슬처럼 눈부신 모습으로 삶을 즐깁니다. 친구들과 같이 무지갯빛 추억을 만들며 행복하게 살려고 합니다. 

내 삶이 아름답고 행복한 것은 풀잎이나 꽃잎의 배려 덕분입니다. 내가 살 수 있도록 삶의 터전을 아무런 조건 없이 자리를 내어주어 고마울 따름입니다. 풀잎이나 꽃잎의 도움 없이는 이슬로서 아름다운 삶은 불가능합니다. 그들이 나를 영롱한 자태를 뽐낼 수 있도록 붙들어주기 때문에 이슬로서의 내 삶이 가능한 것입니다. 

게 중에는 얄궂은 사람도 있습니다. 내 아름다운 모습에 질투를 느껴서인지 풀잎이나 꽃잎에 맺힌 내 삶을 짓밟는 이들도 있습니다. 귀엽고 사랑스럽다며 내 몸을 만지려 달려듭니다. 나는 힘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 나는 생을 마감해야 합니다. 주어진 짧은 삶조차도 살지 못하게 됩니다. 내가 사람을 제일 미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실, 사람보다 더 미워하는 건 바람입니다. 나에게 저승사자나 다름없는 존재니까요. 녀석은 정말 인정머리가 없습니다.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악마처럼 괴롭힙니다. 말 그대로 죽을 맛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날만은 세상에 나가고 싶지 않습니다. 하늘에서도 이를 알았는지 나를 내려보내지 않습니다. 

앞서 말했지만, 나는 하루가 없습니다. 희망도 없습니다. 정말 보잘것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주어진 삶만큼은 누구보다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다 하늘로 날아갑니다. 가끔은 바람을 원망하지만, 그것이 내 운명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분명한 건 누구보다 짧은 삶을 살다 가지만, 맑고 영롱한 자태를 잃지 않으며 행복한 삶을 누리다 생을 마감합니다.

사람들은 가끔 이렇게 말합니다. 이슬처럼 살고 싶다고. 아마 내가 항상 밝고, 행복해 보여서 가 그런가 봅니다. 내가 행복해 보이는 이유는 딱 하나 일 겁니다. 사실, 태양은 우리에게 저승사자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 삶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빛이라고 생각합니다.

행복을 자신에게서 찾지 못한다면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슬인 나는 이 말을 실천한 것뿐입니다. 사람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은 인간에게 삶을 주기도 하지만, 빼앗아 가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원망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차피 그 안에서 행복을 찾아야 하니까요. 어쨌든 내가 햇살을 원망하지 않는 것처럼 사람도 그래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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