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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 로마노

by 훈 작가 2023. 10. 28.

한 나라가 망한 이유를 딱 잘라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다. 내적인 요인과 외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일어났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천년 제국이라 일컫던 로마제국의 멸망도 마찬가지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듯이(Rome was not built in a day), 하루아침에 멸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랜 세월 조금씩 붕괴의 조짐이 시작되어 멸망의 징조가 나타났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결론은 망했다. 정치적으로는 지배계급과 관료의 부패로 내부의 분열이 심했고, 피지배계층의 잦은 봉기와 반발을 불러온 무거운 세금과 착취였다. 경제적으로는 국부의 유출로 심각한 자금의 부족으로 허덕였다. 무역수지의 적자가 날로 심해져 로마제국기의 경제체계가 너무 악화하여 멸망에 영향을 준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한다. 한 마디로 경기 불황도 원인이 되었다.

 

재정이 바닥이 난 상황에서 당시 로마의 지배계층과 시민은 엄청난 복지 혜택을 선점하고 누렸다. 이들을 부양해야 하는 부담은 고스란히 재정 악화로 이어졌다. 목욕탕과 포도주 등으로 상징되는 퇴폐적인 로마문화가 그 산물이다. 로마제국 전성기에 구축된 일련의 시스템(영토 확장→노예 공급→경제성장→복지 강화)에 균열이 생기면서 제국의 경제가 멈추게 되었다.

 

특이한 것은 인구감소가 로마제국 멸망의 중요한 이유라는 사실이다. 원래 로마제국은 인구 대국이었다고 한다. 클라우디우스 황제 때는 인구가 1억 명을 넘어섰다. 심지어 자녀가 10명 이상 가진 집안도 많았다고 한다. 당시 시민들이 거주하는 시가지 주택단지 주변에는 쏟아지는 시민들로 거리를 메워 걷기조차 힘들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인구가 줄어든 이유는 로마제국 확장이 중단되면서 경제발전의 주된 원동력으로 작용했던 노예 공급이 줄어들어서다. 이러한 현상은 생산 활동 인구의 감소로 직결되었다. 이런 이유는 재정 분야의 복지재원 지출에 부담이 가중되었고, 외부에서 유입되는 타민족의 증가까지 더해지면서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기에 이르렀고 내부의 불만이 쌓여 폭발하기에 이르렀다.

 

또 다른 인구감소 원인은 로마제국의 지배계층에게 확산한 출산 기피 현상이었다. 평민 계층 이상에서 아이를 적게 낳거나 심지어는 낳지 않으려는 경향이 심했다. 요즈음 시대 상황으로 표현하면 저출산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이러다 보니 로마제국의 주류를 이루는 핵심 지배계층에 인재 공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내부적인 갈등의 불씨가 되었다고 한다.

가이드의 설명이 귀를 사로잡았다. 그가 이러한 열변을 토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로마제국의 폐허의 성터나 다름없는 <포로 로마노>에 와 있기 때문이다. 찬란했던 로마제국의 영광은 사라진 채 흔적만이 마치 흘러간 옛 노래 <황성옛터>의 가사처럼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가 로마제국의 멸망을 언급한 이유는 바로 이곳이 로마제국 모든 활동이 이곳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서였다.

 

<포로 로마노>는 ‘로마인의 광장’이라는 뜻으로 말 그대로 로마인들이 모여 생활하고 살던 중심지다. 지금도 이곳은 계속 발굴이 되는 곳으로 그 당시 로마 시대 정치, 사법, 종교 등의 활동이 이곳에서 활발히 이루어졌다. 현재는 원로원, 로물루스 신전, 2개의 개선문 등 과거 로마제국 영광의 흔적인 기둥이나 초석만 남아 폐허의 성터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포로(Foro)라는 말은 포럼(Forum), 즉 아고라’(agora)와 같은 공공장소를 의미한다. 로마는 전 지역이 고고학적 가치가 있는 땅이다. 눈으로 보는 단순한 땅이 아니다. <포로 로마노>는 라틴어의 포룸 로마눔(Forum Romanum)의 이탈리아식 발음으로 이곳이 처음으로 세워진 시기는 로마 초기 왕정 시대로 기원전 753년이다. 원로원과 에트루리아 왕에게 대항한 로마 반역을 추모하기 위한 사원, 로마의 중심부였던 아우구스투스 개선문 등 유적의 잔해가 있다.

 

사투르누스 신전(사진 : 가운데 오른쪽 기둥이 8개 남아 있는 신전)이 처음 지어진 것은 기원전 497년으로 로마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신전 중의 하나였다. ‘씨를 뿌리는 자’라는 뜻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농경의 신으로 로마인들에게는 경작을 가르쳐 준 신으로 경배의 대상이었다. 가장 중요한 신전이었기 때문에 지하에는 국가의 보물들을 숨겨놓곤 했다.

신전 위에는 ‘Senatus po-pulus que Romanus’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글의 내용은 로마 원로원 그리고 시민들이라는 뜻으로 당 시대에 이곳이 로마의 중심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문구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정치이념으로 고대 로마 시대 정부를 이르는 말이다. 영문으로 ’the Senate and the People of Rome’이라는 뜻이며, SPQR는 로마를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다.

 

카스토르-폴룩스 신전(사진 : 왼쪽 기둥 3개인 신전) 현재는 세 개의 기둥만 남아 있는데 사실은 전면에 9개를 비롯하여 88개의 기둥을 가지고 있던 카스토르와 폴룩스를 모시는 신전이었다. 쌍둥이자리의 카스토르와 폴룩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두 쌍둥이의 이름을 딴 것이다. 제우스와 레다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 아들 카스토르와 폴룩스를 모시는 신전이다.

원래 BC 495년 레길루스호 전투에서 로마가 승리한 것을 감사하기 위해 BC 495년에 세웠다. 전설에 따르면 카스토르와 폴룩스가 이 전투에 기사로 나타나 로마인의 승리를 도왔다고 하며 카스토르와 폴룩스가 나타났다는 장소에 신전이 위치한다. 카스토르와 폴룩스 신전은 코린트식 기둥으로 되어있고 원래는 길이 49.5m 넓이 32m, 높이 6.7m의 거대한 신전으로 원로원의 모임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높이 23m, 폭 25m의 셉티무스 세베루스 황제(사진 : 사투르누스 신전 뒤쪽) 개선문은 파르티아 전쟁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만들어졌다. 로마에는 이런 개선문이 3개 있다. 예루살렘에 대한 승리를 묘사한 티투스개선문, 콜로세움 앞 광장 서쪽에 있는 것으로 콘스탄티누스가 막센티우스를 이기고 그 승전의 기념으로 세운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그리고 셉티무스 세베루스 개선문이다.

산티 루카 에 마르티나(사진 : 셉티무스 세베루스 개선문 뒤) 교회는.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황제가 재위하던 228년 순교한 마르티나 성녀에게 헌정된 교회이다. 서기 625년 교황 호노리우스의 명에 따라 건설됐으며, 1256년 알렉산데르 4세 교황 시절에 복원됐다. 건물은 이오니아 양식의 기둥으로 중앙에는 돔을 올렸다. 평면 구조는 길이가 같은 동방정교의 십자가형 교회다.

 

로마제국의 멸망 원인 중 하나가 인구감소였다는 사실은 뜻밖이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로마제국은 인구가 계속 늘어나는 시절에도 적극적인 출산장려정책을 펼쳤다고 한다. 권력자가 인구감소가 곧 국력 감소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시사(示唆)하는 바가 크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미혼여성에게 독신세를 징수했다고 하니 놀랄 따름이다. 거기에 출산을 주저하면 벌금까지 부과했다니.

현재 우리의 현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경제생활이 어려워서인지 인구증가율이 갈수록 감소하고 있다는 뉴스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신문의 사설이나 칼럼에서도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는 글이 자주 실린다.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들고 노인인구 증가 추세가 점차 늘어나고 있고 신생아 출산율은 매년 떨어지는 추세다. 장기적인 안목에서는 국가의 생존과 관련된 문제다. 

 

요즈음은 아기를 낳아 양육하고 교육하는데 젊은 부부 세대들의 느끼는 경제적 부담이 크기 때문에 출산율이 저조하다는 의견이 많다. 그러다 보니 애를 낳아 키우기보다 자신의 인생을 즐기고 누리는데 더 큰 비중을 두는 젊은 세대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애를 낳아 키우고 교육하는데 좋은 여건을 조성해야 하는 것이 관건이라는 사실이다.
 
1970년대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인구 정책 구호가 어느덧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가 되었다. 생활 수준은 그 시절에 비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발전했는데 이제는 반대로 정부가 출산장려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는데도 출산율은 개선되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로마제국 멸망 원인의 하나가 인구감소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여행은 보는 즐거움과 배우는 즐거움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하면서 얻는 그것이 단순하게 구경하는데 그쳐서는 안 된다. 여행하는 나라의 역사를 통해 배우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더 나아가 이를 교훈으로 삼아 과거의 불행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각오를 다지는 것이다. 여행이 인증 사진 목록에 단순히 사진 하나를 추가하는 자랑거리에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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