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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이다/동남아

용의 전설이 깃든 "하롱베이"

by 훈 작가 2024. 3. 8.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하는 풍경이다. 하롱베이 일출 풍경을 본 느낌이 그랬다. 운이 좋았다. 여행지에서 멋진 일출을 보긴 쉽지 않다. 항상 그렇지만 날씨 신의 영역이다. 기분 좋은 아침이다. 아침 바다라 그런지 물결이 잔잔하다. 바다라  당연히 파도가 밀려오는 풍경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없다. 오히려 호수같이 고요하다. 참 묘하다. 분명 바다는 맞는데 왜 바다 같지 않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바다라면 끝없는 수평선이 펼쳐져 가슴이 탁 트인 기분을 느껴야 하는데 이곳은 그런 느낌이 없다. 어쩌면 이곳만의 매력일지도 모른다. 

 

호수 같은 수면 위를 미끄러지듯 커다란 목선을 타고 출발했다. 특이게하도 나무로 된 유람선이다. 배 안에 신나는 한국 유행가 음악이 울려 퍼졌다. 관광버스 분위기 같은 트로트 노래다. 이건 완전 내 스타일이다. 테이블마다 회가 나왔다. 나는 현지 가이드에게 소주 한 병을 주문했다. 투어 즐기면서 소주 한 잔을 마셨다. 마이크를 잡은 현지 가이드는 한국인이다. 그가 분위기를 띄우느라 먼저 노래 한 곡을 불렀다. 마이크를 많이 잡아 본 노래 실력이다.

은근히 흥이 돋는다. 이럴 때 내숭을 떨기보다는 차라리 분위기를 즐기는 게 낫다 싶었다. 회를 안주 삼아 참이슬  서너 잔 마시고 노래 한 곡을 신청했다. 술과 노래는 찰떡궁합이다. 흥에 젖어 노래를 부르는 내 모습을 보고 아들과 아내가 나를 보고 웃는다. 노래가 끝나고 자리에 와서 나머지 술잔을 비웠다. 유람선은 한국인 관광객 취향에 맞게 노래방 기계까지 준비가 되어있는 걸 보니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은 모양이다. 

 

갑판 위로 올라갔다. 그림 같은 모습으로 섬들이 나타났다. 반달 모습의 섬들과 침식작용으로 단단한 부분만 남아 송이버섯 느낌을 주는 섬에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아 원시림들이 깎아지른 바위 사이에 붙어있다. 어떤 섬은 모양이 수직을 이룬 절벽을 이룬 다. 그런 섬들 사이를 헤집고 유람선이 지나고 있다. 오가는 유람선에는 하나 같이 관광객들이 타고 있었다. 바다 같지 않게 파도가 없으니 줄길만 한 뱃놀이나 다름없다. 

하롱베이는 하노이에서 170㎞ 떨어진 남중국해 북서쪽 통킹만에 있다. 1994년부터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고, 2011년에는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선정되었다. 하룡(下龍)은 용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뜻이다. 전설에 의하면 하늘에서 용이 내려와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입에서 여의주를 분출한 것이 하롱베이를 가득 메운 섬들로 변했다고 한다.  이곳은 베트남을 대표하는 자연 비경이다. 베트남 북부지방 해안선을 따라 1,553㎞에 걸쳐 1,969개의 석회암 바위들이 3억 년 이상 진행된 침식작용과 해수면의 변화로 생겨난 카르스트 지형이다. 아름다운 모양을 한 섬들이 겹겹이 겹쳐 천하제일의 절경으로 손꼽히는 중국의 계림을 바다에 옮겨놓은 것 같다고 하여 '바다의 계림'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하롱베이에는 3가지가 없다고 한다. 첫 번째는 바로 갈매기다. 가이드 말을 듣고 보니 진짜 갈매기가 안 보인다. 누군가 새우깡이 없어서 갈매기가 없는 것 아니냐고 해서 한바탕 웃었다. 갈매기가 없는 이유는 섬에 독수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바다에 플랑크톤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파도가 없다고 한다. 수많은 섬이 방파제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파도가 일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비린내가 없다고 한다. 그 이유는 연안에서 고기 잡는 것은 금지하고 있고 또한 파도가 치지 않아 물결이 일지 않기 때문이란다.

섬들 사이로 돌고 돌아 수상마을에 왔다. 집 한 채 값이 우리나라 돈으로 150만∼200만 원 정도란다. 수상마을에 있는 집들은 사방 5m쯤 되는 널빤지 위에 살림집을 지었다. 어떤 집에는 개도 키우고 있었다. 사방이 바다인데 개가 좁은 공간에서 얼마나 답답할까? 주민들은 고기를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대부분이 허름한 집이지만 그래도 학교와 행정사무를 보는 곳은 깨끗했다. 수상마을에 사는 주민은 약 3,000명 정도며 2곳의 학교에는 80여 명의 학생이 있다고 한다.

 

전망대가 있는 섬에 도착했다. 티톱(Ti-Top) 섬이다. 러시아 우주비행사였던 티톱은 호찌민이 러시아에서 유학하던 시절 함께 공부했던 친구였다. 호찌민이 베트남 지도자가 된 후 하롱베이를 함께 구경하던 중 이곳을 보고 반한 티톱은 이 섬을 자기에게 달라고 부탁받은 호찌민이 하롱베이는 나의 것이 아니라 베트남 국민들의 것 이라며 정중히 거절했다고 한다. 대신 그의 이름을 따서 이 섬의 이름을 "티톱섬"이라고 붙였다고 한다.

주변 해변에 모래사장에 유람선이 접안했다. 이번 여행을 함께한 우리 일행이 모두 같이 인증사진을 찍고 난 다음, 가이드를 따라 전망대에 가기 위해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경사가 급하다. 코에서 뜨거운 스팀이 계속 나왔다. 몇 번 헉헉거리니 오르니 바로 전망대다. 전망대까지 400개의 계단을 걸어 오르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뻘쭘하게 여기저기 우뚝 선, 섬들이 아래에서는 실감 나지 않았다. 배에서 본 그림과 전혀 다르다.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다.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하롱베이의 오페라하우스' 또는 '하롱베이의 천지'라고 불리는 항루원'이다. 이곳은 영화 '007 네버 다이'의 촬영장소로도 알려진 곳이다. 007 시리즈, 18번째 작품인 ‘네버다이’는 유일한 동양인으로서 본드걸 역에 ‘양자경’이 출연한 영화이기도 하다. 기암절벽에 둘러싸인 ‘항루원’은 바닷물이 만조일 때는 들어가서 볼 수 없다. 출입구가 낮아 낮은 배를 이용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 일행은 모두 구명조끼를 입었다. 가이드가 여행객의 체격과 남녀 비율을 어느 정도 맞추어 분산시켜 2개 조로 나누었다. 우리가 타고 들어갈 배는 모터가 달린 작은 목선이었다. 배는 기껏해야 10명 정도가 승선할 수 있는 크기였다. 가이드가 탄 1조가 먼저 출발했고 이어서 우리가 탄 배가 그 뒤를 따랐다. 멀리 보이는 입구가 개구쟁이 시절 드나들던 초등학교 철조망 울타리 개구멍처럼 보였다. 

 

원숭이 서식한다고 해서 원숭이 섬으로도 알려진 이곳은 사방이 기암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안으로 들어오니 전혀 다른 풍경이다. 자연이 빚어낸 아름다운 경관에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넓고 큰 우물 안에 갇힌 형상이다. 둥근 하늘만 보인다. 마치 바다에 떠 있는 잠실 종합 운동장 안에 들어온 느낌이다. 아니, 그보다 주둥아리가 큰 항아리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하늘만 뻥 뚫려 있다. 

그것도 그렇지만 바다에 원숭이가 산다는 것이 신기하다. 바다 한가운데 있는 섬이지만, 무엇을 먹고사는지 궁금해진다. 가이드는 여기 원숭이들이 바닷고기를 잡아먹고 산다고 한다. 어떻게 잡느냐고 물으니 원숭이들은 고기가 보이면, 바로 뛰어들어 잠수까지 해 잡아먹는다고 한다. 호기심이 어린 시선으로 섬 주변을 지켜보았지만. 아쉽게도 그런 장면은 직접 볼 수 없었다. 가이드 말이 ‘뻥’이 아닐 거라 믿는다. 

여행을 못 가는 이유가 3가지 있다고 한다. 돈이 있지만 나이 들어 다리가 떨려 못 가고, 건강은 문제가 없는데 돈이 없어서  못 가는 경우다. 마지막으로  돈,  건강에 문제가 없는데 바빠서 못 가는 경우다. 세상엔 이런저런 핑계가 많다.  여행은 우리 시대 로망이다.  상상에만 머무는 여행은 의미가 없다. 어차피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이다. 조금이라도 후회를 덜 하려면 가급적 일찍 떠나야 한다. 내일이 확실하게 보장된 인생은 아무도 없다. 중요한 건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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