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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행복, 그대와 춤을

산책

by 훈 작가 2026. 1. 20.

엉뚱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가끔 단어 선택에 있어 헷갈릴 때가 있다. 내가 지금 걷고 있는 게 산보(散步)인지, 산책(散策)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사전을 찾아보니 산보는 바람을 쐬거나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멀지 않은 곳을 이리저리 천천히 거니는 것이고, ‘산책은 한가로이 가볍게 이리저리 걷는 것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미묘한 차이이지만 다르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그 차이를 모르겠다. 사전의 설명만 보면 ‘산보’ 일 수도, ‘산책’ 일 수도 있다. 사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막상 글을 쓰려고 보니까 제목부터 어떻게 정해야 할지 머뭇거렸다. 그러다 후자를 선택했다. 왜냐하면 일상에서 산책을 더 많이 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산책은 걷는 거다. 걷는 동안 풍경을 보고 소리를 듣고, 바람의 향기도 맡는다. 동시에 생각의 흐름을 정리하기도 한다. 가벼운 운동 효과도 있어 일석이조(一石二鳥).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다가 더 이상 문장을 이어갈 수 없을 땐 난 무조건 멈추고 산책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일단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그뿐 아니다. 산책하는 동안 스마트 폰을 멀리하게 되어 좋고, 차를 타고 운전할 때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욕을 하지 않아 도 된다. 평소 주변의 사소한 것들도 눈에 들어온다. 직박구리도 만나고 녀석이 즐겨 먹던 빨간 산수유 열매도 보인다. 주인과 산책 나온 강아지의 눈망울도 볼 수 있고, 꼬마 아이들이 놀고 있는 웃음소리도 만난다.

좀 민망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의외의 효과도 있다. 식사 후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복부 팽만감이 줄어들고 가스가 밖으로 배출된다. 소화 과정에서 발생한 가스를 눈치 안 보고 시원하게 배출할 수 있어 개운하다. 모르긴 해도 장의 운동이 활발해져 방귀가 나오는 모양이다. 나만 그런지 모르지만 이건 분명한 사실이다. 실제 경험해 보니 그렇다.

 

찰스 다윈은 자신의 집 주변에 직접 만든 자갈길을 생각의 길이라 부르며 매일 걸었다고 한다. 그는 복잡한 생각을 정리할 때 산책을 했다고 한다. 아인슈타인도 걷기가 창의력에 매우 중요하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그가 프린스턴대에서 근무하는 동안 날마다 2.4거리를 출/퇴근하는 게 일상이었다는 게 이를 뒷받침한다.

 

그들은 산책이 단순한 신체 운동이 아니라 정신적인 준비라고 여겼다. 산책을 하는데 딱히 분명한 목적은 없다. 그냥 천천히 둘러보며 걷다가 뜻하지 않은 장면을 보거나 만나는 게  작지만 행복이다. 주변을 살피다 따뜻한 시선으로 보면 문득 새로운 영감이 떠오르기도 한다. 산책에서 얻을 수 있는 의외의 소득이다.

 

내 경우 그래서 산책하는 것은 아니다. 이유는 단순하다. 하루 한 번이라도 하늘을 보고 싶어서다.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사실 그런 여유조차 없이 살았던 날들이 많았다. 삶에 부대끼고 쫓기다 보면 퇴근 시간이었던 옛날을 생각해 보면 그땐 왜 그렇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잠깐이라도 하늘을 만나는 이 시간. 산책이 주는 최고의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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