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고택, 정감이 갑니다. 고풍스러운 멋과 아름다움을 아우르는 말, 운치(韻致) 있다는 표현이 딱 어울립니다. 현충사 이순신 장군 고택입니다. 고택 앞 홍매화와 백매화가 활짝 피었습니다.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입니다. 해마다 3월 이맘때쯤이면 찾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보고만 있어도 힐~링이 됩니다. 화려한 멋이 아니기에 더 정감이 느껴집니다. 은은하면서도 소박함이 더할 나위 없이 봄의 정서와 딱 맞아떨어져 보는 순간 쌓였던 스트레스가 ‘훅’하고 한 방에 날아가는 기분이 듭니다. 고택이 흐드러지게 꽃망울이 터뜨린 매화꽃하고도 절묘하게 어울리기 때문일 겁니다.
참 단순합니다. 고택의 기와 아래 창틀과 백매화 홍매화뿐입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실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라 있긴 있습니다. 나머지 공간은 여백입니다. 꽉 채워서 아름다운 게 아니라 여백이 있어 멋스러움이 운치를 더하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여백의 미가 주제(꽃)를 돋보이게 하거든요.
일상에서도 아름다움은 그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너무 바쁜 시간의 굴레에서 아등바등 살고 있습니다. 어쩌면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하면서 앞만 보고 달립니다. 잠시 멈추어 서서 시간의 여백을 만들면 좋을 텐데 우리는 그걸 알면서도 여백이란 공간을 만들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유 없는 삶을 사는 거죠.

여백이나 여유는 아름다움을 만드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삶이란 하얀 도화지에 가득 채워 그려 넣어야만 행복이 아닙니다. 운치의 멋은 여백의 미입니다. 삶의 행복도 비슷합니다. 주어진 시간을 한 치의 여유도 없이 꽉 바쁘게 채워야만 행복이 아닙니다. 내 삶의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때 조금의 여유를 남겨 두는 게 행복입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입안에 가득 넣으면 맛을 음미할 수 없습니다. 입안에 여유 공간(여백)을 남겨 놓고 천천히 음미할 수 있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진도 여백을 적당히 남겨 두어야 주제가 돋보입니다. 그래서 뺄셈의 미학이라 설명하는 사진작가도 많습니다. 행복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전을 보니 운치(韻致)는 ‘고상하고 품위를 갖춘 멋’이라고 풀이되어 있습니다. 운치 있는 삶은 곧 마음의 여유와 행복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물질적인 행복이 비중을 많이 차지한다고 여기는 세상입니다. 그런 이유로 정서적 행복의 비중이 덜 소중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부정적으로 보면 배부른 소리일 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물질적 풍요로움이 곧 삶의 여유는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물질적 여유일 뿐입니다. 중요한 건 마음의 여유입니다. 내 삶의 시간을 나름대로 쪼개어 여백을 만들어 자유를 갖는 겁니다. 그 공간을 허투루 쓰는 게 아니라 나만을 위한 정서적 사치를 즐기는 겁니다. 매화 향기 그윽한 봄의 향기와 바람을 만나는 것도 그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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