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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라떼별곡

놀이터

by 훈 작가 2024. 11. 13.

거실 창문을 열었습니다. 밖에 있는 가을 햇살을 불러들이기 위해서죠. 그때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내려다보니 보니 아파트 단지 놀이터였습니다. 여자아이들 몇몇이 그네에서 놀고 있더군요. 뭐가 재미있는지 여자애들 특유의 수다스러움이 은근히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그 모습이 싫지 않아 보았습니다.
 
잠시 지켜보았죠. 조금 지나니 자전거를 탄 남자아이 둘이 오더군요. 녀석들은 잘 아는 사이인지 서로 이야기를 나누더군요. 녀석들이 노는 모습이 시선을 끈 이유는 별거 없습니다. 사실 놀이터이지만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평소에 볼 수 없었거든요. 토요일이나 일요일 거의 텅 빈 놀이터만 보아왔으니까요.
 
우리 아파트 놀이터는 연중 개점휴업상태인 날이 많았습니다. 썰렁한 놀이터가 왜 만들었을까, 할 정도였으니까요. 아주 뜸하게 배드민턴을 치는 모습을 보이긴 했습니다. 아들과 아버지로 보이는 가족이었죠. 그것도 일 년에 손을 꼽을 정도이었으니 놀이터는 유명무실한 존재로 아이들로부터 외면당해 왔다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아이들의 놀이가 많이 사라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잊어져 간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대가 바뀌어 나타난 현상일 겁니다. 여자아이들의 소꿉놀이나, 고무줄놀이, 남자아이들의 딱지치기, 구슬치기뿐만 아니라 남녀가 어울려 함께 할 수 있는 숨바꼭질 놀이 등을 요즘은 보기 어렵습니다.

고유 놀이문화를 밀어낸 자리에 레고 같은 고가의 장난감이나 게임기, P.C 방, 스마트폰이 차지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주로 실내에서 하거나 아니면 혼자서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인 듯합니다. 여기에 치열한 부모들의 교육열로 이 학원 저 학원 다니느라 놀 수 있는 시간이 없을 정도로 사교육에 내몰리는 탓도 있을 겁니다.
 
시대 흐름이니 그러려니 합니다. 한편으론 요즘 아이들이 안 됐다 싶기도 합니다. 어려서부터 입시경쟁에 공부로만 내몰리는 것처럼 보여서입니다. 호기심을 자극하고 모험적인 놀이를 하면서 마음껏 에너지를 발산하고 놀이를 즐기는 것도 교육이거든요. 정서적으로 필요하고요. 오로지 성적만 우선시하는 사회적 인식이 문제로 보입니다.
 
그나마 어린아이들은 유치원이 있고 노인들은 노인정이 있는데 청소년들은 어디서 어떻게 노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이 학원 저 학원 다니며 쉬는 시간에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놀 시간도 놀 수 있는 곳도 없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런 이유로 청소년 범죄의 원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른들의 욕심 때문에 아이들은 놀 수 없습니다. 빼앗긴 거죠. 과장일지 모르지만 3살만 되면 부모들의 극성은 시작됩니다. 내 아이를 의대로 보내기 위해. 그러다 보니 영어유치원에서부터 사고력 수학, 이런저런 선행학습을 위해 학원에 다녀야 합니다. 대치동 학원이 날로 번성하는 이유입니다. 사교육 마케팅에 놀아나는 거죠.
 
놀이터가 된 학원 대신 어른들이 빼앗은 아이들의 놀이를 되돌려주고 공부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어느 정도는 배려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오랜만에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한참 쳐다보았습니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자주 들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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