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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라떼별곡

터널

by 훈 작가 2025. 2. 21.

수술대에 올라가 누웠습니다. 간호사가 금방 끝날 거라며 말하더군요. 사실 무서웠습니다. 그녀와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빛이 눈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의식적으로 눈을 감으려 하지 않았죠. 마취 주사를 맞은 탓인지 힘없이 빛의 끝자락을 놓아야 했습니다. 의식이 작동하지 않은 동안 난 나를 잃어버렸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릅니다. 긴 터널 끝에 빛이 보였습니다. 그것도 아주 희미하게. 내 영혼을 지켜주던 희망이 내 몸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빛이 만들어낸 그림자가 조금씩 선명해지더군요. 어머니의 얼굴 윤곽이 보였습니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시더군요. 그 순간 난 죽음의 강을 건너갔다 온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게 고등학교 2학년 12월 18일기말고사 하루 전 일이었습니다난 그렇게 시험을 치르지 못한 채 반 아이들 보다 일찍 겨울 방학에 맞이한 셈이 되었습니다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수술 부위가 아물지 않아 건강을 회복할 수 없었습니다치료를 받아도 호전되지 않았습니다겨울 방학 끝나갈 무렵 다시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1차 수술은 복막염, 2차 수술은 장결핵이었습니다. 건강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로 고 3이 되었습니다. 수업은 오전만 받고, 오후는 치료받으러 다니느라 거의 수업을 듣지 못했습니다. 암울했습니다. 나는 그때 빛이 안 보이는 터널 속을 걷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의 선택으로 생명의 불꽃만 힘없이 유지하고 있다고 받아들였습니다.
 
신이 날 버린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유는 모르지만, 날 외면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스스로 절망이란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겁니다. 시간이 갈수록 입시가 코앞에 다가오는데 허약해진 건강때문에 책상 앞에 앉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불안한 날이 이어졌죠. 이러다 낙오자가 되는 건가.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인생이란 여정을 달리다 보면 터널을 지나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터널의 끝엔 반드시 빛이 있습니다. 그러나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빛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터널이 너무 길어 그럴 수도 있고, 곡선이라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 순간마다 빛을 만나지 못할 것 같아 불안하고 힘든 게 우리의 삶입니다.

이미 들어온 터널인데 뒤돌아 갈 수도 없습니다. 아니 뒤돌아봐서도 안 됩니다. 빛을 만날 때까지. 그 과정에서 이겨내고 배워야 합니다. 빛의 소중함을. 그래야 삶의 과정에서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절망이란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자기 믿음에 대한 강한 긍정만이 절망을 희망으로 만듭니다.
 
터널을 지나고 있어도, 지금 숨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희망입니다. 터널 안이 어둡다고 비관할 필요가 없습니다. 터널을 지나는 동안은 불안이 엄습하며 절망의 문턱에서 어른 거립니다. 빠져나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빠져나온 사람은 자신의 삶을 성공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긍정의 에너지를 얻게 됩니다.
 
중요한 건 포기하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끝이 없는 터널은 없습니다. 터널의 끝에는 반드시 빛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터널은 절망과 희망 사이를 이어주는 길에 불과합니다. 갑자기 터널에 들어왔다고 스스로 책망하면 안 됩니다. 인생이란 소설에서 만나는 터널은 반전의 변곡점이 되어야 합니다. 포기하면 안 됩니다.
 
터널(어둠)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게 아닙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건 나 자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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