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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라떼별곡

고향의 봄

by 훈 작가 2025. 4. 8.

고즈넉한 산골 마을이 보입니다. 산언저리에서 내려다본 풍경입니다. 마을을 지나는 동안 한 사람도 보지 못했습니다. 이방인의 등장에 개 짖는 소리만 요란했습니다. 산수유꽃이 노랗게 물들어 더할 나위 없이 정겨운 풍경인데 왜 이리 쓸쓸한 느낌이 드는지 한편으론 내가 잘못 왔나 싶을 정도로 기분이 묘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힐링이 또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순도 100%의 맑은 공기, 소음 하나 없는 고요함, 따사로운 봄 햇살, 이름 모를 새소리 이 모든 게 도심에선 찾을 수 없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오늘 누려야 할 행복을 다 얻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맞습니다. 정말 오길 참 잘했다. 그렇게 생각한 게 사실입니다.

콧노래로 고향의 봄이라도 흥얼거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마을이 너무 조용해 내가 마치 정적을 깨뜨리는 침입자가 된 느낌이 든 겁니다. 그때 마침 나를 발견한 개 한 마리가 마구 짖기 시작한 겁니다. 녀석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 어쨌거나 미안한 생각을 하며 마을 어귀를 벗어나 산길로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산수유꽃이 노랗게 물든 산비탈 저수지 쪽에서 경운기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진을 몇 장 찍고 그쪽으로 가 보았습니다. 어르신께 무슨 일을 하고 계시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마늘밭에 물을 경운기로 물을 뿜어 올리고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83세인 어르신과 잠시 얘기하다 인사를 하고 산언저리 길로 올랐습니다.

산 아래 내려다보이는 마을, 홀연 고향이 떠오릅니다. 기억이 가물가물한 그 시절의 봄과 비슷하지만 다릅니다. 그래도 그 시절엔 나물을 캐는 아낙네들, 밭에서 쟁기질하며 소를 모는 풍경, 시냇가에서 천엽을 즐기며 노는 개구쟁이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는 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이 없습니다. 무거운 정적만 감돕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적어도 동요 '고향의 봄' 한 소절이 어디선가 들려야 할 것 같은데 이따금 들리는 개 짖는 소리뿐입니다. 그 시절 고향의 봄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사라진 겁니다. 고향의 봄이. 과연 요즘 아이들의 고향의 봄은 어떤 모습일까. 동요 '고향의 봄'을 부르기나 할까. 부른다면 혹시 이렇게 불러야 하지 않을까.

/나의 살던 고향은 회색빛 도시/
/떡볶이집 피씨방 뺑뺑이 학원 /
 
물론 아닐 겁니다. 그러나 시대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그 시절 불렀던 '고향의 봄'과는 거리가 멀 것 같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여기엔 아이들이 안 보입니다. 아니 없습니다.
 
올라왔던 길을 내려갑니다. 산자락 어귀에 진달래꽃이 피었습니다. 계곡 쪽 도랑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도 들립니다. 돌담길 옆 살구꽃도 하얗게 피었습니다. 풍경에 눈이 팔려있는데 뒤에서 경운기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까 저수지에서 만났던 어르신이었습니다. 어르신과 눈 맞춤하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할아버지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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