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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라떼별곡

직박구리

by 훈 작가 2025. 4. 11.

도심에서는 새 보기가 힘들어졌습니다. 기껏해야 까치나 비둘기 정도입니다. 파란 하늘에 새들이 날아다니고 봄날 아침을 깨우는 새들의 노랫소리를 창가에 들리면 얼마나 좋을까. 그랬으면 좋으련만 현실에선 그저 희망일 뿐입니다. 그나마 미세먼지나 황사가 없으면 다행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4월로 접어들면서 벚꽃이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했습니다. 심한 일교차 탓인지 작년보다 며칠은 늦은 듯합니다. 봄꽃은 꽃이 먼저 피고 나중에 잎이 나오는데 이상하게도 꽃과 잎이 같이 나오는 나무도 있습니다. 기후변화 때문에 꽃들도 뭔가 날씨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이상 현상을 보이는 듯합니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 나무 길에서 새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디서 나는 걸까. 주인공을 찾지 못했습니다. 분명 요란스러운 수다 소리가 들리는데 보이질 않습니다.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눈치를 채면 녀석이 달아날 것 같아 숨죽이고 나무 위를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찾았습니다. 시끄럽게 수다 떨 듯했던 녀석은 직박구리였습니다. 직박구리 소리는 좋게 들으면 음악적이고, 언짢게 들으면 시끄럽게 들립니다. 무리를 지어 지저귀면 그렇게 들립니다. 녀석의 울음소리 때문에 '훌우룩 빗죽새'라고도 합니다. 특히, 영역을 다투거나 다른 녀석을 부를 때 매우 시끄럽습니다.

녀석을 알게 된 것은 산수유 열매 때문입니다. 수없이 매달려 있던 열매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한 겁니다. 눈 내리는 어느 날 카메라를 챙겨 나갔습니다. 눈과 어우러진 산수유 열매를 찍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때 녀석을 처음 만났습니다. 녀석들이 몰려와 열매를 해치워 빨간 열매가 얼마 보이지 않았습니다.

 

녀석이 산수유 열매만 축낸 건 아닙니다. 다른 식물의 열매도 매우 좋아합니다. 그래서 과수농가에서는 녀석을 매우 싫어합니다. 이 때문에 유해조류로 분류되어 있는 새이기도 합니다. 봄엔 꽃을 따먹고 여름에는 곤충을 잡아먹습니다. 하지만 종자 분산 에이전트로 불리기도 합니다. 식물의 열매를 좋아하는 식성 때문입니다.

 

녀석이 한가롭게 망중한(忙中閑)을 즐기는 것 같습니다. 보아하니 벚꽃에서 꿀로 배를 채우고 따뜻한 봄날 오후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모양입니다. 간혹 지저귀는 녀석의 소리도 제법 이 봄과 잘 어울립니다. 꾀꼬리같이 아름답지는 않지만 그래도 정겹게 느껴집니다. 도심에서는 좀처럼 들을 수 없는 새소리여서 그럴지도 모릅니다.

 

소음과 공해로 가득한 도심에서 새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건 행복입니다. 녀석이 유해조류로 분류되긴 했어도 새를 나무랄 것만은 아닐 겁니다. 봄이면 흔하게 보였던 제비들이 우리 주변에서 사라진 걸 보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직박구리는 죄가 없습니다. 자연의 세계에선 공존의 법칙이 곧 불문법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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