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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이다/동남아

다딴라 폭포

by 훈 작가 2025. 6. 3.

‘NEW ALPINE COASTER’
 
영문 표기가 눈에 띄었다. 폭포에 가려면 이걸 타야 하는가. 걸어서 가면 시간도 걸리고 힘이 드니까. 나는 걷는 것이 오히려 낫다고 생각했다.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소나무 숲에서 퍼지는 맑은 피톤치드를 마음껏 허파로 빨아들이며 힐-링 하듯 말이다. 숲에서는 그런 여유로움의 시간이 훨씬 좋겠다 싶었다.

달랏의 숲은 특이하게도 소나무가 울창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열대의 숲이 아니다. 해발 1,500m의 고원지대에 이런 숲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이런 의문을 가이드는 이렇게 설명했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달랏을 휴양지로 개발하는 과정에서 소나무(금송)를 심었다는 것이다. 이유는 그들이 휴양을 즐기기 위해서.

소나무는 산사태를 방지하고 토양을 보존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프랑스식 정원의 중요한 미적 요소로 작용한 측면도 있단다. 거기에 소나무에서 나오는 수지는 산업적으로 활용될 수 있어 경제적인 면에서도 이유도 있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소나무 숲은 식민 지배가 남긴 프랑스의 잔재다.

가이드 안내에 따라 알파인 코스터 승차장으로 들어갔다. 한 사람씩 탈 수도 있고, 두 사람이 2인 1조로 탈 수 있는 카트다. 가이드가 타는 방법을 설명했다. 운전 방법은 간단하단다. 양쪽 손잡이를 앞으로 밀면 가고, 뒤로 당기면 브레이크가 되어 멈춘다고 한다. 안전을 위해 앞카트와의 간격을 20m 정도 유지하란다.

동계올림픽 루지 종목이 떠올랐다. 썰매에 누워 얼음 트랙을 따라 빠른 속도로 1km 정도를 내려가는 장면이 순간 뇌리에 스쳤다. 그 정도는 아니겠지만 비슷한 thrill을 온몸으로 짜릿하게 느끼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알파인 코스터는 얼음이 아니라 트랙이 레일이다. 어쨌든 여태껏 한 번도 타 보지 못한 걸 여기서 타 본다.

안전요원이 벨트 착용 상태를 확인하고 출발하라고 신호를 보낸다. 나는 양 손잡이를 앞으로 밀었다. 카트가 천천히 움직였다. 조금 더 밀었더니 속도가 빨라진다. 카트가 레일 위를 미끄러져 달린다. 마치 놀이동산에 온 것처럼 나는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다. 놀이동산에서 아이들이 신나게 소리 지르는 기분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속도를 높이니 재밌다. 코너를 돌면서 중심이 쏠리자 덜컥 겁도 났다. 속도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루지가 곡선 구간을 돌 때마다 흔들림이 심하다. 순간 빠르게 질주하다 사고 나는 게 아닐까 싶어 무서웠다. 자칫 선로 밖으로 튕겨 나갈 것만 같았다. 내려가는 코스에다 적당히 곡선 구간이 있어 타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하차장에 도착하니 바로 폭포다. 물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갔다. 숲 언덕 위에 바위를 타고 하얀 물줄기가 스키 타고 내려오듯 흐른다. 다른 폭포처럼 물이 떨어지는 폭포가 아니다. 그래서일까. 요란한 폭포 소리가 나지 않았다. 폭포를 이루는 낙차가 큰 수직이 아니라 비스름한 바위 위에서 흘러 내려오기 때문이다.

가이드는 폭포의 전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다탄라 폭포에 선녀들이 목욕하러 자주 내려왔다고 한다. 수정처럼 맑은 물과 아름다운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폭포에 종종 하얀 안개가 끼는데, ‘다딴라’라는 이름은 선녀들이 목욕하는 모습을 감추기 위해 나뭇잎을 뿌린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폭포를 보고 탄성을 지르는 사람은 없다. 밋밋한 풍경이 여행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폭포 앞에서 인증 사진을 빼놓을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가 보다. 그래도 여길 왔다 갔노라 하고 증명할 수 있는 건 사진뿐이다. 난 그런 사진에 관심이 없어 줄 설 필요가 없다. 그냥 사람이 없는 순간 셔터만 누르면 된다.

폭포 투어는 여기까지다. 이게 ‘다딴라 폭포’ 구나’ 하고 몇 초만 지나면 설렘이 순식간에 식어 사라진다. 아무리 호기심을 자극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더라도 일단 보고 나면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에 따라 물거품처럼 날아간다. ‘다딴라 폭포’ 보는 순간 ‘생각보다 별로네’ 하는 생각이 드는 폭포라 더 그렇다. 그걸 알고 왔고 확인할 뿐이다.

이런 지루함을 눈치챈 가이드가 그만 돌아가자 한다. 다시 돌아가는 길도 알파인 코스터를 타고 간다. 오히려 폭포를 구경하는 것보다 알파인 코스터를 타는 게 더 마음이 설렌다. 아마도 어릴 적에 이런 걸 타 보지 못했기에 그럴지도 모른다. 하기야 그때는 이런 게 없었다. 돌아가는 길에 뭔가 주객이 전도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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