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hoto 에세이/행복, 그대와 춤을

비몽사몽

by 훈 작가 2025. 5. 27.

베개 밑에서 진동음이 울렸다. 4시 30분에 맞추어 놓은 스마트폰 알람 소리다. 이때가 괴롭다. 몸은 잠에 취해 무거운데 일어나라 재촉한다. 잠시 망설였다. 갈까 말까. 내 안의 두 개의 영혼이 서로 밀고 당긴다.
 
“얼른 일어나 가야지. 늦으면 일출 사진을 못 찍어.”
“피곤한데, 다음에 찍으면 되잖아.”
 
비몽사몽 상황 속에 나는 잠시 망설였다. 선택의 기로에서 피곤함을 핑계로 내세운 유혹을 냉정하게 뿌리쳤다. 솔직히 꿀맛 같은 단잠을 물리치는 게 쉽지 않다. 
 
일출 사진을 찍으러 나가기로 마음먹은 날이면 매번 벌어지는 일이다. 요즘은 일출 시간(05:15)이 빠르다. 여름으로 넘어 갈수록 그렇다. 늦지 않으려고 세면을 생략한 채 서둘러 옷을 입은 후  카메라를 챙겨 현관문을 나섰다.

시동을 켜고 차가 출발하자마자 차창 문을 모두 활짝 열었다. 몽롱한 영혼을 정신 차리게 한 건 새벽공기다. 제법 차가운 공기가 인정사정없이 얼굴을 때린다. 종종 잠이 덜 깬 상태로 운전대를 잡는다. 그렇다고 졸음 운전을 하는 건 결코 아니다. 다행히 이른 새벽 시간엔 거리가 한산하기 짝이 없다.  
 
비몽사몽의 시간은 길지 않다. 이 괴로움을 뿌리치지 못하면 일출 사진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해가 길어지니 부득이 겪어야 하는 싸움이다. 그럼에도 일출 사진을 찍으러 나가는 날이면 매번 괴롭다. 비몽사몽이란 고통 없이 일출사진을 촬영할 수 없다. 그렇다고 그럴듯한 일출사진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비몽사몽이란 단어가 날 괴롭힌 건 오래전이다. 학창 시절 누구나 시험이란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홍역을 치르듯 시험의 늪에서 한동안 허우적거리며 살아야 한다. 모의고사든 기말고사든 수능시험이든 시험은 늘 마귀할멈처럼 괴롭혔다. 한 문제라도 틀리지 않으려고 밤늦게까지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하다 보면 잠과 씨름해야만 했다.

분명 나는 책을 보고 있는데 흐릿한 안개가 어른거렸다가 사라지고 글자가 또렷하게 보였다가 다시 겹쳐 보이곤 했다. 수정체가 제대로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글자가 춤을 추면서 눈꺼풀이 내려왔다. 꾸벅꾸벅 졸다가 정신 차리면 비몽사몽 중인 나를 보게 된다. 누구나 한 번쯤 이런 경험이 있지 않을까 싶다.
 
어른이 된 후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 같은 단어가 비몽사몽이었다. 그런데 아니다. 사진을 취미로 하면서 이 단어와 다시 인면을 맺어야만 했다. 내 의지와 전혀 무관하게. 시험하고도 관계없다. 문제는 앞으로도 이런 인연을 쉽게 끊을 수 없을 것 같은 현실을 살아야 한다. 사진이란 취미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그래도 비몽사몽이 학창 시절처럼 괴롭히는 일은 없다. 스트레스도 아니고, 마귀할멈 같은 존재도 아니다. 단지 사진을 즐기기 위해 넘어야 하는 작은 산일뿐이다. 그걸 넘으면 사진이 주는 기쁨이 있고 희열이 있다. 어차피 사진을 즐기려면 피할 수 없는 운명적인 단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Photo 에세이 > 행복, 그대와 춤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름다운 고독  (28) 2025.06.13
함박꽃과 웃음  (22) 2025.06.11
별과 달  (24) 2025.05.16
Rose day  (22) 2025.05.14
행복으로 가는 길  (26) 2025.05.0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