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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라떼별곡

삼봉(三峯) 이야기

by 훈 작가 2025. 6. 20.

도담삼봉은 단양팔경으로 알려진 명소입니다. 남한강 가운데 있는 장군봉, 북쪽은 처() , 남쪽은 첩() 봉인데, 장군봉은 처 봉을 등지고 첩 봉을 바라보는 형상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남편이 아들을 얻고자 첩을 들여 아내가 돌아앉은 것이라고 합니다. 이름을 그렇게 지은 걸 보니 아들을 낳지 못한 여인의 시집살이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습니다.
 
조선의 개국공신인 정도전에 얽힌 전설도 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도담삼봉은 정선군에 있던 삼봉산이 홍수 때 떠내려온 거라 정선에서 단양에 매년 세금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이때 어린 소년이었던 정도전이 도담삼봉을 우리가 갖고 싶어서 갖고 온 것도 아니고 오히려 물길이 막혀 피해를 보니 정선군에서 도로 가지고 가라고 말하여 세금을 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장군봉에는 '삼도정'이라는 정자가 있습니다. 1766년 단양군수 조정세가 '능영정'이라는 이름의 정자를 지었는데 민폐를 끼친다며 헐어 내고, 1807년 김도성이 사각형 모양의 정자를 지었지만 1972년 대홍수로 유실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삼도정은 1976년에 김상수가 새로 지어서 단양군에 기증했답니다. (퍼온 글)
 
정도전이 젊은 시절 이곳 경치가 좋아 오랫동안 머물렀답니다.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 한 것도 도담삼봉에서 따온 것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처음엔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삼각산(북한산)의 세 봉우리 아래 집을 짓고 살아 그의 동료들이 삼봉(三峯)이라 부르는 데에서 그의 호가되었다는 게 정설이라고 합니다.

정도전과 정몽주는 이색의 문하에서 동문수학한 둘도 없는 친구였습니다. 두 사람은 정치적 노선이 갈리면서 등을 돌리게 됩니다. 정몽주는 고려의 마지막 충신으로 후대에 절개의 상징이라는 이름을 남겼지만, 정도전은 왕권을 위협한 권신(權臣)으로 조선왕조실록에서까지 간신으로 평가받는 인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려를 개혁해야 한다는 생각은 이성계나 정도전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왕이 부덕하여 민심을 잃으면, 왕을 폐할 수도 있다는 역성혁명(易姓革命)의 급진적인 성향의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정몽주는 정치적 신념이 달랐습니다. 고려왕조만은 지켜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던 겁니다.
 
새벽길 133km를 달려온 도담삼봉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주변엔 아무도 없습니다. 도착하니 04시 45분, 동트기 전이라 그런지 조금 쌀쌀합니다. 어쩔 수 없이 얇은 패딩을 꺼내 입어야 했습니다. 일출 사진을 찍으러 왔습니다. 도담삼봉을 보니 정도전이란 이름이 생각나더군요. 호가 삼봉(三峯)인 이유도 있죠.
 
간신은 처세에 능하죠. 사회생활에 실패하거나 좌절할 일이 없습니다. 권력의 눈 밖에 나지 않고 출세 가도를 달리죠. 권력에 비위를 잘 맞추고 언제나 고개 숙여 맞장구칩니다. 반면 충신은 권력의 잘못을 바로잡으려고 직언하다가 잘리거나 밀려납니다. 그러다 보면 간신이 충신 대접받아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세상이 됩니다.
 
조선왕조의 개국공신이 간신이라는 역사적 평가, 아이러니하게도 정도전과 정몽주 두 사람 모두 55세 나이에 이방원(태종)에게 죽었고, 평가는 극명하게 갈립니다. 강물은 오늘도 흐르고 흘러간 역사의 강물은 두 사람을 기억합니다. 역사의 심판은 냉정하고 객관적 사실에 입각한다는 사실을 권력은 명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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