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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감성 한 잔

봄을 기다리며

by 훈 작가 2026. 3. 4.

어제는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다. 이제 움츠러들었던 대지도 꿈틀거리며 봄맞이 준비를 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오늘은 음력으로 정월대보름이다. 양력으로는 3월인데, 헷갈린다. 봄이라고 할 수 있는지 말이다. 내가 성질이 급한 탓인지 나는 불쑥 봄이란 말을 꺼내고 말았다. 봄이 빨리 왔으면 하는 마음이 앞서서 일 게다.

 

아련하게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봄을 맞을 땐 농사 준비하느라 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그 무렵 초등학교 입학식도 있었다. 동네 누나들은 바구니를 들고나가 들녘에서 봄 나물케는 모습도 흔했다. 개구쟁이 아이들과 동네 형들은 각자 만든 연을 들고 언덕에 올라가 날리곤 했다.

 

, 동사 보다에서 온 말로 보인다. 맞다. 봄은 뭔가 보이는 계절이다. 겨우내 기를 펴지 못한 생명체들이 기지개를 켜며 모습을 드러내는 게 봄이다. 다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어디선가 꽃눈이 움트려고 한창 분주할 것이고 또 새싹을 트기 위해 땅 밑에서 용트림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자연의 봄은 보이지 않을 뿐이다.

 

누구나 마음속에 봄이란 밭이 있다. 봄은 올 한 해 꽃 피워 낼 꿈의 씨앗을 준비해야 할 때다. 저마다 꿈의 씨앗은 다르겠지만 우린 그렇게 봄을 맞이한다. 청춘의 봄이라 해서 생동하는 젊은이만 향유하는 봄은 아니다.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명체가 저마다 꿈을 향해 도약하는 봄이기에 봄은 살아 있음을 보여주어야 하는 계절이다.

 

살아 있음을 증명해야 하는 봄, 지난 주말부터 심한 감기 몸살에 시달려 기어이 병원을 찾고 말았다. 병원을 찾는 일이 없었는데 최근 들어 몸이 옛날 같지 않음을 느끼다 졸지에 감기로 오게 되었다. 오전 이른 시간임에도 대기 중인 환자들로 가득했다. 대부분 중년의 남자와 여자였고 마스크를 한 것으로 보아 감기 환자들로 보였다.

 

이젠 청춘의 봄이 아니라 내겐 중년의 봄이다. 예전 같지 않다. 병원을 나오면서 다소 의기소침했다. 기력이 떨어진 것 같아서다. 하지만 봄의 여신은 청춘만 사랑하지 않을 것이고, 나이도 묻지 않을 것이다. 나는 뜨거운 열정으로 그녀를 포옹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내 마음은 변함없다. 그리고 내 마음의 봄에 심어야 할 씨앗을 준비하고 있다.

 

봄을 기다리는 이유는 여신과 빨리 데이트하고 싶어서다. 만나서 봄의 정겨움을 사진에 담기도 하고, 글도 쓰고 싶다. 그러려면 봄과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봄은 갈수록 짧아지고 본래 봄의 모습을 자꾸만 잃어가는 것을 보아왔다. 올해는 어떤 모습으로 봄과 첫 데이트를 하게 될는지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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