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도 스마트 폰에 빠져 산다. 앉으나 서나 시선을 떼지 못한다. 이 광풍의 후유증이 감각을 무디게 만드는 듯싶다. 보기엔 모두 봄을 기다린 것처럼 보이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닌 것 같다. 그저 때가 되면 오겠지 하는 표정들이다. 이유가 뭘까. 디지털 문명이 만든 유혹의 달꼼함에 모두 취한 탓이다.
무관심인지 무감각인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런 와중에 ‘관종(관심종자)’이란 말이 등장했다. On-line, Off-line을 막론하고 우리는 이 시대가 만든 소외와 단절을 품고 살기 때문이다. 디지털 문명이 발효시킨 자본주의는 SNS가 상큼한 산소처럼 일상을 가득 채운다. 문명의 이기가 잉태한 단절을 우리는 즐기면서 외롭지 않은 척한다.
테스형은 간파했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인 것을. 그런 이유로 우린 주변의 관심을 못 받으면 미칠 것 같은 정신병자로 자신의 영혼을 흑화 시켜 간다. 동시에 스스로 택한 고립과 소외를 견디지 못한다. 인터넷이 모든 걸 지배하는 세상에선 계절의 변화에 감각이 퇴화된 듯 별 관심이 없다. 감성을 냉대시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하는 세상이니까.

수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도심의 일상, 관성과 타성만 반복된다. 삶은 여전히 돈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학고, 시간은 늘 바쁨에 쫓겨, 봄은 무관심 영역에서 맴돌 뿐이다. 어쩌다 커피 향이 그리울 때 여유로운 시간을 독백처럼 가슴에 안고 시선을 창밖으로 던져본다. ‘봄이 오긴 하는 건가.’ 하고 물음표(?)를 유리창에 찍어 본다.
모처럼 관심 속에 들어온 봄, 어쩌면 봄도 그러려니 하고 세상을 이해할 것 같다. 봄이 왔는데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봄도 무덤덤해지기 마련일까. 그렇게 며칠간 스치며 나는 우리 곁에 봄을 나도 모르게 외롭게 만들었다. 봄이 온 걸 눈치채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버린 것이다. 그런 봄을 오늘에서야 나는 반갑게 눈 맞춤 했다.
무뎌진 감성과 무관심이 부른 실수였다. 날마다 걷는 공원길에서 만난 봄,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한참 서 있었다. 봄, 네가 왔는데 모른 척 딴청 부리는 것 같아 너무 미안했다. 하지만 봄은 개의치 않고 연초록의 앙증스러운 미소로 날 반긴다. 산책길을 걸을 때마다 봄이 나를 부르며 손짓했을 텐데. 어쩌다 이렇게 감성이 무뎌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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