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헷갈린다. 봄인지 아닌지. 동틀 무렵 들녘에 나와 보면 쌀쌀하다. 아직도 겨울의 뒤끝이 남아 있음을 느낀다. 영하의 날씨인 데다가 옷깃마저 여미게 할 정도로 차다. 양력 3월은 봄이지만 음력으로는 엊그제가 정월 대보름(3월 3일)이었다. 마음은 봄인데 겨울이 생각보다 지루하게 세월의 끝자락에서 비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요 속에 잠긴 들녘과 미호천 습지는 무채색의 풍경 속에 잠겨 있다. 그럼에도 봄기운이 느껴지지 않은 이유는 아침저녁으로 기온 차가 크기 때문이다. 그런 습지의 숲 속에도 봄이 꿈틀거리는지 새소리가 요란하다. 녀석들도 본능적으로 봄이 오고 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분주하게 재잘거리며 정적을 깬다.
계절의 경계가 모호한 3월, 남녘 통도사에는 홍매화가 만발했다는 소식이다. 사진 밴드에도 서로 경쟁하듯 사진이 올라온다. 겨울이 데리고 온 손님, 봄은 벌써 꽃을 피워 사람을 부르고 있는데 충청도의 봄소식이 더디기만 하다. 어쩔 수 없이 성질이 급한 탓에 일출이라도 담으려고 나왔건만 봄소식은 어디쯤 왔는지 알 수 없다.
일출을 기다리며 상상으로 봄을 그려본다, 어쩌면 기다리는 것은 게으름일지도 모른다. 막연하게 오겠지, 하는 그런 마음이면 봄도 그다지 반갑지 않게 여길지도 모른다. 차라리 스스로 대문을 열고 버선발마다 하지 않고 마중 나가 봄을 맞는 게 나을 듯싶다.. 작년에 그런 마음으로 새벽잠을 설치며 전라도 화엄사까지 달려가 홍매화를 만났다.

봄의 전령사하면 매화다. 매화의 기품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찬 바람에 굴하지 않고 제 한 몸을 태워 하얀 불꽃을 피우는 그 모습을 보면 옛 선비들이 사군자의 으뜸으로 매화를 손꼽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 매화가 머지않아 아파트 단지 내 만발할 것이다. 아무리 겨울이 길어도 곧 매화가 봄의 메세지를 전하러 오리라.
봄기운을 머금고 있는 바람이 일렁이더니 안개가 피어오른다. 여명의 붉은빛이 안개와 어우러져 습지에 깔리고 잔잔한 침묵 사이로 봄의 얼굴을 담은 해가 떠오르고 있다. 그 아래 낮은 곳에서는 생명을 움트고 있을 게 분명하다. 어쩌면 어린 새싹의 생명들이 봄을 더 기다리고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느끼지 못할 따름이다.
겨우내 움츠리고 있었던 우리는 마냥 봄을 기다리고만 있었다. 누군가 가서 데리고 올 생각하지 않고서 집에만 콕 쑤셔 박혀 봄이 왔냐고 물어본다. 그러면서 말로만 희망의 봄을 외쳤다. 생각해 보니 봄을 데리고 온 것은 떠나는 겨울이 아닌가 싶다. 마치 그 겨울이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이젠 날 원망하지 마세요. 봄을 데리고 왔으니까요.”
겨울이 우리에게 모질게 한 이유는 봄에 대한 시샘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조금 더 버텼나 보다. 이제 봄인데 날씨가 왜 이렇지, 하고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하늘만 쳐다볼 필요 없다. 방 안에서 창문을 빼꼼히 열고 손을 내밀어 왔는지 더 이상 마음속으로 재지 말자. 문을 열고 나가 봄을 찾아 나서자. 봄이 저만치 다가오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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