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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단편소설

빼빼로데이 (4)

by 훈 작가 2024. 11. 8.

 

이미지 출처 : pixabay

   
   BTS 콘서트 생각만 하면 기분이 좋았다. 그럼, 언제쯤 얘기할까. 그래 학교 중간고사 끝나는 날로 하는 게 좋겠다. 그날은 보나 마나다. 시험 끝나면 스트레스를 푸느라 여자애들은 노래방으로, 남자애들은 피시방으로 몰려간다. 이때만큼은 인근 노래방과 피시방은 학원에 다니는 애들로 꽉 찬다.
   나는 은영이에게 시험 끝나는 날 다른 약속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러자 “뭐 있니?” 하며 다그치듯 물었다. 내가 아재 개그 하듯 “궁금하면 오백 원.”하고 너스레를 떨자, 바로 “민우야, 썰렁한 거 너도 알지?” 하며 은영이가 웃어넘겼다. 우리는 그렇게 스스럼없이 다가가고 있었다.
   그런데 은영이한테 이상한 게 있다. 초등학교 때 내가 알고 있던 은영이가 아니다. 그때는 시험문제 하나만 틀려도 울고불고 난리 칠 정도로 소문이 났던 애였다. 그런 애가 공부 얘기는 지금까지 단 한마디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혹시 밖에서는 신나게 노는 척하며 집에서는 밤샘 공부만 하는 게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중간고사 마지막 날. 학원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다른 애들과 달리 단골 분식집으로 향했다. 은영이가 전과 같이 떡볶이와 김말이 그리고 튀김을 시키자, 바로 나왔다. 애들이 없으니 너무 조용하다. 손님이 우리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가 김말이를 떡볶이 양념에 찍어 먹자, 은영이도 따라 하며 빤히 쳐다본다. 궁금하니 빨리 말하라는 눈빛이다. 나는 BTS 콘서트 티켓이 든 봉투를 가방에서 꺼내 은영이 앞쪽으로 살짝 밀며 열어보라고 말했다.
“이게 뭐니?”
“보고 기절하기 없기.”
“기절?”
   은영이가 날 한 번 보며 열어보더니 입가에 떡볶이 양념이 묻은 입술로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같이 가자는 얘기지?”
“당근이지.”
   예상대로였다. 활짝 웃는 은영이 모습이 너무 예쁘다. 이제부터 은영이는 누가 뭐라고 해도 내 여친이라 생각했다.
“민우야, 오늘은 내가 살게.”
“아니야, 내가 살게.”
“민우야, 남은 김말이 네가 먹어. 난 배불러 못 먹겠다.”
   물티슈로 스마트폰 거울을 보며 입을 닦으며 은영이가 말했다.
“웬일이야 김말이를 다 남기고.”
   나는 은영이를 한 번 보고 남은 김말이 두 개를 먹었다. 그러는 사이 은영이가 먼저 일어나 카운터로 가 얼른 체크카드로 계산한 후 날 보며 웃는다. 나는 잽싸게 일어나 은영이에게 가서 “내가 낸다고 했잖아.”라고 했더니 “야, 가방이나 챙겨.” 하며 말한다.
   분식집을 나오는데 은영이가 갑자기 내 오른쪽 손을 잡았다. 순간 심장박동이 빨라지면서 짜릿한 전율이 빠르게 온몸으로 퍼지는 것 같았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금방 내 얼굴이 빨개진 걸 느낄 수 있었다.
“강민우, 너, 여친 없지?”
“어~어 없어.”
더듬거리며 말했다.
“바보, 떨긴 왜 떨어?”
“아, 아니야, 내가 왜 떨어.”
   이런 느낌 처음이다. 왜 이리 떨리는 걸까. 은영이 얼굴을 보며 걷고 싶은데 빨개진 내 얼굴을 볼 것 같아 부끄러웠다. 이런 나를 살짝 본 은영이가 피식 웃었다. 나는 안 그런 척하려고 애썼지만, 콩닥거리는 가슴이 수그러들지 않았다. 은영이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을 계속 이어갔다.
“강민우. 오늘은 내가 버스 타는 데까지 같이 가 줄게.”
“괜찮아, 너 먼저 가.”
“야, 너랑 좀 오래 있고 싶어서 그래. 싫어?”
“아~ 아니.”
   내 마음을 어떻게 잘 알고 있지. 사실 나도 조금이라도 은영이랑 같이 있을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딱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은영이가 건너자며 잡은 내 오른손을 툭툭 쳤다. 신호등이 바뀐 것이다. 은영이 손을 잡은 채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손이 촉촉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게 이상했지만 싫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집에 가는 버스라도 조금 늦게 왔으면 좋겠는데, 하필이면 눈치 없는 버스가 저만치 오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못내 아쉬운 마음으로 은영이 손을 놓았다.
“갈게. 은영아, 내일 보자.”
   나는 손을 흔들고 뒤돌아 버스에 올랐다. 차창 밖으로 손을 흔드는 은영이가 시야에서 점점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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