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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단편소설

빼빼로데이 (2)

by 훈 작가 2024. 11. 6.

대치동 은마아파트 상가 터줏대감 ‘만나분식'(출처 : 세계일보)

 

   일부러 반을 옮겼다. 옆자리에 앉고 싶은데 막상 강의실에 들어가면 다른 자리에 앉게 된다. 강의 시간이 끝나고 나갈 때, 말이라도 건네 보고 싶은데 얼어붙은 입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미리 준비하고 학원에 왔는데 그게 잘 안된다. 벌써 일주일째다. 오늘도 심호흡 한 번 크게 하고 강의실로 들어갔다.

   앞에서 세 번째 줄에 앉아 있는 은영이를 슬쩍 보며 한 칸 건너 옆자리에 앉았다. 가방을 책상 옆에 놓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나같이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있는 모습이다. 늘 그렇듯 강의가 시작되기 전 분위기는 너무 조용하다. 나도 교재를 책상에 올려놓고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수업은 ‘Lesson 8, Family Story.’이다. 엠마 왓슨을 닮은 미국인 강사와 눈이 마주쳤다. 나를 시킬 것 같아 고개를 슬쩍 돌렸다. 그때 “Min Woo”하고 날 부르더니 읽어보라 시킨다. 떨렸다. 조금 지나니 나도 모르게 원어민처럼 술술 나왔다. Speaking이 끝나자, 강사가 “Good job.” 하며 웃는다. 다른 애들도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때 은영이가 나를 보며 한마디 했다.

~, 제법 하네.”

~, 아직 멀었어.”

   얼떨결에 은영이를 보며 대답했다. ‘, 웬일이지. 얘가 말을 다 걸고.’ 바로 그때 “No, No, Korean.” Anna 선생님이 푸른 눈의 쌍꺼풀 눈을 크게 뜨고 웃으며 말하자 은영이가 곧바로 “Sorry, Teacher.”라고 말했다. 이후 다른 애들도 몇 명 더 시켰다. 실력이 만만치 않은 애들이다. Speaking이 끝나자, Anna 선생님이 몇몇 단어의 발음을 되풀이하며 바로 잡아 주었다. 그 와중에 나는 계속 곁눈질로 계속 은영이를 훔쳐봤지만, 은영이는 꿈쩍하지 않았다.

   금방 한 시간이 지나갔다. 강의가 끝나자 얼른 은영이 뒤를 따라 나가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다. 은영이가 먼저 말을 걸어올 줄 알았는데 아무 말이 없다. “은영아!” 하고 부르고 싶은데 또 입안에서만 맴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수강생들이 우르르 건물 밖으로 빠져나갔다. 은영이를 힐~끈 쳐다보며 옆을 막 지나갈 때였다.

, 강민우. 우리 떡볶이 먹고 갈래.”

어어, 그러지 뭐.”

   어떡하면 말을 붙여 볼까, 고민 중이었는데 한순간에 해결되었다.

, 언제 그렇게 영어 배웠냐?”

엄마가 좀 유별나.”

그게 무슨 말이니?”

말도 마. 영어유치원 때부터 눈만 뜨면 영어 동영상 보고, 방학 때마다 누나랑 같이 해외영어 캠프 다니느라 친구들하고 놀지도 못했어.”

어느 나라로?”

미국, 영국, 뉴질랜드. 그나저나 넌 공부도 짱인 애가 학원에 왜 다니니?”

누군 다니고 싶어 다니니?”

은영이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

나 이민 가. 호주로.”

이민?”

   그 말에 궁금해서 더 물어보려고 할 때, “다 왔다. 민우야. 여기 맛있어.” 은영이가 말을 끊었다. 학원가 이면 도로 끄트머리에 있는 분식집이었다. 테이블마다 또래 학생들이 떡볶이와 김말이 튀김을 앞에 놓고 수다를 즐기느라 시끄럽다. ‘어떻게 주문할까?’ 물어보려고 하자 은영이가 떡볶이 2인분에 김말이와 튀김까지 시켰다. 나는 양이 너무 많은 거 아닌가 생각했다. 내 표정이 이상했는지 은영이가 쫄면도 하나 더 시킬까?” 하고 묻기에 괜찮다고 말했다.

   BTS를 시작으로 은영이가 입을 열었다. 그뿐 아니었다. 다른 아이돌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었다. 나도 좀 아는 편인데 한 수 위였다. 얘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새침데기인 줄로만 알았던 은영이도 또래 애들과 다르지 않았다. 예쁘기만 한 줄 알았던 은영이는 성격도 밝았다. 자신감 넘치는 표정이 초등학교 때와 다르지 않았다. 나는 그런 은영이가 부러웠다.

, 내가 수다 많이 떨었다고 뒤에서 흉보기 없기다.”

내가 왜 널 흉봐, 그런 일 없어.”

대신 오늘은 내가 쏠게. 다음엔 네가 쏘는 거야

아니야, 내가 살게.”

   분식집을 나왔다. 은영이가 버스 타고 가는 모습을 본 후 건너편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날마다 오늘 같은 기분이었으면 좋겠다.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이다. 룰루랄라 흥얼거리며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강민우, 왜 이리 늦어?”

~ 친구랑 분식집에서 얘기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어.”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니, 목소리가 아주 밝은데.”

아 아냐, 그런 거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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