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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영이가 학원에 안 나온 지 2주가 지났다. 카톡 대화방도 나갔는지 뜨지 않았다, 전화를 걸면 통화 정지된 번호라는 안내 음성만 들렸다.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 정말 이렇게 헤어지는 건가. 생각할수록 속상하고, 하루하루가 우울했다. 한동안 은영이에게 주려고 가지고 다니던 선물을 쇼핑백에 넣어 다시 책꽂이 아래에 내려놓았다.
12월이다. 조금 있으면 겨울 방학이다. 은영이는 도대체 왜 연락이 되지 않을까. 또래 여자애들만 보면 자꾸 은영이 생각만 나고 공부도 집중이 안 된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생각하며 선물은 무얼 할까. 어떤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할까. 홍대거리도 같이 가볼까 했는데….
학원에서 돌아와 방으로 들어가는 나를 보고 본 엄마가 물었다.
“강민우,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니?”
“아니, 없어.”
방에 들어오자마자 가방을 내팽개치듯 침대 위로 내던졌다. 학교에 가나, 학원에 가나, 은영이 얼굴만 떠올라 미치겠다. 친구들이 어디 아프냐고 물으면 ‘아니, 없어.’라고 대답하는 것도 짜증 난다. 수업 시간에 멍하니 은영이를 생각하다 선생님께 혼난 적도 있다. 그때마다 은영이가 너무 얄밉고 한편으로 더 보고 싶다.
게임이나 하며 잊어 볼까, 하고 컴퓨터를 켜며 책장 쪽을 보는데 은영이가 준 선물이 눈에 띄었다. 쇼핑백 안에 든 선물을 꺼냈다. 파란색 포장지에 붙어 있는 투명 테이프를 조심스럽게 뜯었다. 붉은색 빼빼로 과자 사이로 분홍색종이가 눈에 보였다. 은영이 편지였다.
민우야!
나, 다음 주에 호주로 떠나.
원래 내년 1월이었거든, 갑자기 그렇게 됐어. 빼빼로데이 때 말하려고 했는데…. 막상 헤어진다는 말 하려니까 섭섭하고 우울해지는 거 있지. 나도 모르게 자꾸 눈물이 나올 것 같고, 이상하게 슬퍼져.
사실, 네가 우리 반에 기웃거릴 때부터 알고 있었어. 점심시간 때 운동장에서도 나랑 눈이 마주칠 때면 얼른 피해 도망치듯 했었잖아. 애들한테 물어보니까 ‘1반 강민우야.’ 하더라고. 중학교에 가면 꼭 사귀어 봐야지 생각하고 있었어.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 거야. 인연이 없는가 보다 했어.
그런데 어느 날 네가 학원에 나타난 거 있지.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어. 너무 반가웠지. 그날부터 왜 그렇게 신났는지 몰라. 어쨌든 그동안 너랑 같이 보낸 시간이 너무 즐거웠어. 무엇보다 우리 BTS 콘서트 함께 본 거,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거야.
참, 내 동생 때문에 많이 놀랐지. 또래 애들이 놀린다고 엄마가 어릴 적부터 옷도 다르게 입히고 학교도 1년 늦게 보냈어, 게다가 머리 스타일도 서로 다르게 하고 다니니까 그냥 동생인 줄 알아. 네가 오해할 만했어.
그리고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런데, 내가 먼저 떡볶이 먹으러 가자고 해야 하니? 사실 그때 자존심 많이 상했어. 안 되겠다 싶더라고, 그래서 빼빼로데이 때 내가 먼저 좋아한다고 하려고 했는데…. 그걸 못해 아쉬워. 그나저나 너는 참 답답해. 남자다웠으면 좋겠어. 네가 먼저 해야 하는 거 아니니? 많이 기다렸는데. 너는 정말 바보야, 바보.
민우야, 아무튼 정말 고마웠어. 헤어져도 너를 잊지 않을게. 우리 만남 좋은 추억으로 오래오래 간직하자.
그럼 잘 있어. 안녕.
2019.11.16.
은영이가.
창밖에 펑펑 눈이 날린다. 나도 모르게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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