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피스러운 걸 처음 알게 된 것은 어릴 때 대중목욕탕에 갔을 때였습니다. 시골엔 없거든요. 동네 목욕탕에 들어가 옷을 벗는데 잠시 쭈뼛거렸습니다. 부끄러웠던 겁니다. 다른 사람 앞에서 훌훌 옷을 다 벗는다는 게 처음이었거든요. 하지만, 대중목욕탕이니 벗지 않을 수가 없었죠. 결국 눈치를 보다가 옷을 다 벗고 후다닥 탕으로 들어간 기억이 납니다.
성경에 따르면 선악과를 먹으니, 옷을 벗은 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마 그때부터 인간은 부끄러움을 알게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한문으로 ‘벗는다’ 뜻의 벗을 ‘裸(라)’는 옷 ‘衣(의)’ 자와 나무 열매를 뜻하는 실과 ‘果(과)’가 합해져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니 인간은 태초부터 벗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존재였다고 생각됩니다.
‘나체(裸體)’ 하면 벌거벗은 몸이 연상됩니다. 하지만 나무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한자로 벗을 나(裸)는 나무에 잎이 낙엽이 되어 다 떨어졌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한문으로 잎이 다 떨어져 앙상한 나무를 나목(裸木)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적나라(赤裸裸)하다는 표현도 다 벗은 상태를 의미하는 뜻에서 나온 말입니다.

가을이 지나면서 나무들은 옷을 벗습니다. 아름답게 치장했던 단풍도 미련 없이 벗어던집니다. 사람과 반대입니다. 우린 추운 겨울이 싫어 하나라도 옷을 더 입습니다. 찬 바람이 몸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합니다. 그것도 부족해 모자도 쓰고, 손에 장갑도 끼고, 심지어 마스크까지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겨울이 오면 사람들은 나목과 달리 몸을 더 감싸고 자꾸 숨기려 합니다. 혹독한 추위가 무서워서 그럴 수도 있을 겁니다. 추위를 견디려니 어쩔 수 없는 본능일 겁니다. 나목에 비하면 유난스럽습니다. 더우면 덥다고 날리고, 추우면 춥다고 호들을 떠는 게 인간입니다. 자연에 순응하는 나목(裸木)과는 너무 다릅니다.
부끄러움을 아는 인간은 스스로 감추고 싶은 게 많은 존재인가 봅니다. 그게 정상적인 사람의 모습이죠.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오히려 뻔뻔해야 사는 세상이 된 것 같아 씁쓸한 것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 등장한 ‘내로남불’이란 사자성어가 대표적인 표현일 겁니다.

퍼온 글을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 항상 같은 장소에서 구걸하던 거지가 어느 날 지나가던 신사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재작년까지 내게 늘 10,000원씩 주셨잖아요.”
“예, 그랬죠.”
“그런데 작년부터 5,000원으로 줄이더니 올해엔 또 1,000원으로 줄이셨습니다. 대체 이유가 뭐죠?”
“그거야 전에는 내가 총각이었으니 여유가 있었지요. 하지만 작년에 결혼했으니 5,000원 주었고. 이제는 애까지 있으니 1,000원밖에 못 준 거죠.”
그러자 거지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아니, 그럼 내 돈으로 당신 가족을 부양한단 말입니까?”
거지같이 뻔뻔한 사람이 많습니다. 많아도 너무 많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다 알 겁니다. 요즘 내가 TV-뉴스를 안 보는 이유입니다. 보기 싫거든요. 화도 나고요. 주로 내가 내는 세금으로 월급 받는 사람들이죠. 거지 근성도 있는 사람들입니다. 선거 때만 웃으며 손을 내밀고, 끝나면 바로 돌변하죠. 언제 그랬냐는 듯.
나목은 벗어도 아름답습니다. 사람도 내면의 본질이 드러날 때 그 사람의 진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뻔뻔합니다. 죄가 드러나도 버팁니다. 아니라고 억지 부리고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날마다 TV 주요 뉴스에 등장하니 아예 보지 않는 겁니다.
발가벗고 자신을 드러낸 모습이 진실입니다. 진실처럼 포장된 아름다움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나목처럼 당당한 아름다움이 진정한 아름다움입니다. 적어도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그래야 합니다. 그래야 뻔뻔한 세상이 되지 않습니다. 겨울 나목을 닮은 지도자가 왜 우리에겐 없는지 우울한 세상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