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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라떼별곡

빨간 유혹

by 훈 작가 2024. 12. 24.

루돌프 사슴코를 닮은 열매가 가지마다 매달려 있습니다. 산수유 열매입니다. 하얀 눈이 내리면 유독 도드라져 보입니다. 열매를 만져보면 탱글탱글합니다. 붉디붉은 표면이 보드랍고 매끄러워 아름다운 여인의 살결처럼 느껴집니다. 하얀 솜사탕 같은 눈이 내리는 날이면 빨간색이 강렬해 고혹적인 매력을 발산합니다.
 
유혹은 새들을 향한 산수유만 특별한 애정 공세입니다. 겨우 내내 이어질 겁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유혹을 자극하는 색으로 새들을 꼬여내려는 속셈이 깔려 있습니다. 이는 자손을 널리 퍼뜨리려는 전략적인 계산이 숨어 있는 겁니다. 이에 넘어간 직박구리 녀석들이 수시로 드나듭니다. 방해한 것 같아서 미안했습니다.
 
식물학적으로 보면 겨울은 불임의 계절입니다. 가을까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면 끝입니다. 그런데 산수유는 다릅니다. 널리 퍼뜨려야 하는데 바람으론 날아가는 게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바람 대신 새를 이용하려고 전략을 바꾼 겁니다. 빨간 유혹은 봄에 꽃이 피는 산수유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12월의 빨간 유혹은 단언컨대 성탄절입니다. 나하고 아무 상관없는데 들뜨게 합니다. 왜 그런지는 모릅니다. 그냥 분위기에 젖어 그런 듯합니다. 젊은 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번화가를 돌아다니고, 찻집에 앉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죽이고, 그러다가 선술집에 들어가 소주잔을 기울이곤 했습니다. 모두 빨간 유혹에 흔들린 탓입니다.

다른 유혹이 또 있었습니다. 산타 할아버지입니다. 동네 예배당 앞엔 크리스마스트리에 얽기 설기 붙어 반짝이는 꼬마전구는 늘 가슴을 설레게 했습니다. 내가 잠든 사이 산타할아버지가 굴뚝으로 몰래 들어와 선물을 주고 갈 거라 기대했는데 유감스럽게도 번번이 오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한때 그랬을 겁니다.
 
하얀 눈과 어우러진 산수유 열매가 묘하게도 산타할아버지 복장을 떠올리게 합니다. 왜 빨간색은 유혹적으로 보일까. 언뜻 생각하니 우리가 먹는 많은 식물의 열매가 빨갛습니다. 먹는 건 생존의 기본 본능입니다. 모든 유혹의 출발은 식욕에서 출발합니다. 그런 식욕이 충족된 바탕 위에 삶의 욕망이 있습니다.
 
빨간 유혹에 흔들리는 것은 단순히 직박구리만의 본능이 아닐 겁니다. 그보다 산수유가 어떻게 이런 전략적인 방법을 통해 자손을 번식시키려 했는지가 더 놀랍습니다. 인간의 사고와 언어로는 생각하기 힘든 영역입니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저마다 독특한 종족 번식의 전략이 있는 듯합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지 않았다면 빨간 산수유 열매에 눈 길이 가지 않았을 겁니다. 사진의 유혹이 사로잡은 것은 단순한 색의 조화입니다. 하얀색과 가지마다 수없이 매달려 있는 빨간색 열매가 너무 아름답게 보여 사진을 찍은 것뿐입니다. 이처럼 사진의 유혹은 눈이 오는 겨울에도 내 마음을 뜨겁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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