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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라떼별곡

눈이 내리네~

by 훈 작가 2024. 12. 23.

온다는 말도 없이 눈이 내립니다. 항상 그랬습니다. 눈이 내릴 땐. 소리 없이 오는 눈이 아름다운 이유는 눈의 언어가 침묵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눈처럼 눈으로 말할 때가 더 강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그래서일까요. ‘침묵은 금이다’는 명언이 있습니다. 이유야 어떻든 문득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립니다. 어쩔 수 없이 눈에 이끌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그가 날 부르지도 않았는데 난 창가로 가 눈을 만납니다.
 
창밖을 바라봅니다. 눈 멍(때리기)에 빠져 봅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낭만입니다. 눈이 없는 겨울은 낭만 감성을 자극하지 않습니다. 을씨년스럽고 몸만 움츠러듭니다. 하지만 눈이 내리는 날이면 달라집니다. 감성 세포가 살아나 낭만에 젖어 들게 합니다. 갑자기 커피도 생각나고 분위기 있는 카페라도 찾고 싶은 생각이 납니다. 혹은 내리는 함박눈에 몰입하다 보면 추억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이렇게 눈이 내리는 날에 가장 잘 어울리는 명곡(샹송)이 있습니다. Salvatore AdamoTombe La Neige입니다.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눈 오는 날, 도심의 번화가나 조용한 카페거리를 지날 때면 이 노래가 흘러나오곤 했습니다. 때로는 샹송 대신 폴 모리아 악단의 아름다운 연주곡이 들리기도 했습니다. Salvatore Adamo 특유의 달콤하고 호소력 있는 샹송을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콧소리로 흥얼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이 노래의 불어 첫 구절이 이렇게 시작됩니다.
 
Tombe la neige/톰버라 네져
 
그런데 발음이 우리말로 돈 벌어 나 줘처럼 들려 그 시절에 우린 그렇게 따라 하곤 했습니다. 마치 유행처럼 부른 겁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웃으면서. 눈 내리는 풍경을 보니 그런 추억이 스쳐 잠시 상념에 잠겨 보았습니다.
 
눈을 기다렸습니다. 눈 내리는 사진을 사진을 찍고 싶어서입니다. 눈이 펑펑 내리는 사진이야말로 겨울 분위기를 실감 나게 하거든요. 하지만 찍어보니 눈 내리는 풍경을 사진으로 표현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일단 눈내리는 날이 많지 않습니다. 그것도 오는 둥 마는 둥 내리는 눈이면 의미가 없습니다. 어설프게 내리는 눈은 아무리 찍어도 도무지 눈이 오는 건지 안 오는 건지 표시가 나지 않거든요.
 
생각만큼 많이 내리는 눈이 아니라 그저 보기만 했습니다. 그래도 찍어보는 게 나을 것 같아 카메라를 챙겨 현관문을 나섰습니다. 내리는 눈이 사진에 잘 표현되려면 아무래도 배경이 어두운 곳이 좋을 것 같아 인근 공원으로 갔습니다. 조금이라도 눈이 사진에 잘 나타날 것 같은 곳이니까요. 아무튼 눈이 펑펑 많이 쏟아지길 바라면서 공원으로 향했습니다. 쌀쌀한 날씨 때문인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눈이 내리네. 당신이 가버린 지금/눈이 내리네. 외로워지는 내 마음/꿈에 그리던 따뜻한 미소가/흰 눈 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네./
 
나는 눈을 맞으면 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노랫말처럼 눈이 내립니다. 조금씩 내리던 눈이 내 마음을 알았는지 펄펄 날립니다. 눈 내리는 사진 찍기에 딱 좋은 날입니다. 조리개(F값)와 WB(화이트 밸런스)를 조절해 가며 셔터의 손맛을 즐겼습니다. 플래시를 사용하는 건 필수입니다. 그래야 빛이 눈송이에 반사되어 눈이 잘 표현되니까요. 그럼에도 사진이 내 마음 같지 않게 찍힙니다. 카메라를 다루는 실력이 부족한 탓입니다.
 
올겨울은 을씨년스럽습니다. 45년 전 악몽 같았던 그해 겨울을 떠올리게 한 사건 때문입니다. 어수선한 시국이 안정을 되찾아 가고 있습니다. 물론 여전히 제 밥그릇 싸움만 하는 정치권을 보면 볼썽사납습니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니 그러려니 합니다. 성탄절을 앞두고 있습니다. 어렵다고 합니다. 경기가 빨리 좋아졌으면 하는데 걱정입니다. 이번 크리스마스엔 눈이라도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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