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선사로 가는 도중에 가이드가 틱광득 스님 이야기를 꺼냈다. 스님이 이 절에서 수행하며 공부하던 곳인데 스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며 동영상(유튜브)을 보여 주었다. 그런데 너무 충격적이었다. 정말 너무 끔찍한 장면이었다. 스님 한 분이 화염 속에 타고 있는 영상이다. 바로 틱광득 스님이 소신공양하는 장면이라며 설명을 이어갔다.
문제의 장면은 1963년 6월 11일, 베트남 호찌민시 대로에서 일이 벌어졌다. 틱낫한 스님의 은사이자 베트남 불교계에서 추앙받던 틱광득(1898~1963) 스님이 캄보디아 대사관 앞 도로에서 소신공양을 행동에 옮긴 것이다. 충격적인 이 장면은 다음 날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됐고, 전 세계가 경악했다.
발단은 종교 탄압이다. 1956년 미국의 지원을 받은 고 딘 디엠(1901~1963) 이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정권을 장악한 그가 불교 탄압에 나섰다. 사찰을 파괴하고 부처님 오신 날 행사조차도 허용하지 않았다. 베트남 불교계가 반발할 수밖에 없는 상항이었다. 스님들이 길거리에 나서 독재정권의 부당함을 규탄했다.
디엠 정권은 공권력을 동원해 스님들을 무참하게 짓밟았다. 수십 명의 스님이 경찰이 휘두른 흉기에 맞아 숨지거나 다쳤고, 많은 스님이 연행돼 감옥에 갇히게 됐다. 틱광득 스님은 이를 외면할 수 없었다. 수년간 무문관에서 수행하던 스님은 정권의 탄압에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었다. 고통받는 스님들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 했다.
스님은 베트남 불교를 위해 소신공양을 결심하고 이 같은 뜻을 베트남 불교본부에 전했다. 상좌들과 주변 스님들이 이를 말렸다. 하지만 스님의 큰 뜻을 꺾을 수 없었다. 공양 전날 상좌들을 모아 놓고 “내가 만약 앞으로 넘어지면 흉한 것이니, 그때는 모두 희망을 버려라. 그러나 뒤로 쓰러진다면 결국 우리가 승리해 평화를 맞게 될 것이라.” 말했다.
다음날, 많은 인파가 거리로 나왔다. 틱광득 스님은 도로 중앙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머리 위로 휘발유가 부어졌고, 스님은 성냥불을 켰다. 순식간에 온몸에 불길이 휩싸였다. 뜨거운 화마가 스님의 법구 전체로 번졌지만 꼼짝하지 않았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스님들과 주민들은 절을 하거나 안타까움에 울음을 터트렸다.
스님은 마지막까지 허리를 곧추세워 가부좌를 풀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10분 뒤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어떤 화마도 반드시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스님의 의지를 꺾지 못한 것이다. 시민들의 동요를 의식한 디엠 정권은 타다 남은 스님의 법구를 서둘러 수습해 소각로에서 디젤연료를 이용해 6시간 동안이나 태웠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스님의 심장만은 타지 않았다고 한다. 연료를 보충해 두 시간을 더 태워도 스님의 심장은 여전히 그대로였고, 당황한 디엠 정권은 심지어 황산까지 뿌려 보았으나 끝내 스님의 심장은 녹지 않았다는 것이다. 스님의 심장은 지금도 하노이국립은행에 보관되어 있다고 가이드는 말했다.
틱광득 스님의 소신공양으로 반정부 시위는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스님의 뒤를 이어 소신공양하는 스님들이 줄을 이었고, 시민과 학생, 공무원들도 반정부 시위에 가세해 디엠 독재정권에 저항했다. 여기에 디엠 정권을 보호하던 미국도 충격을 받았다. 반미감정이 격화되는 것을 우려한 미국이 정권 지지를 철회하자, 바로 디엠 정권은 무너졌다.
소설 등신불이 생각난다. 등신불은 소신공양 후 남은 육체에 금물을 부어 불상을 만든다. 자신의 어머님 죄를 사하기 위한 소신공양이다. 난 이해하지 못했다. 뜻은 알지만. 틱광득 스님의 죽음을 종교적으로 미화하는 게 아닐까? 어찌 보면 분신자살이다. 머리가 혼란스럽다. 종교가 그리고 권력이 뭔지?
* 소신공양(燒身供養) : 자기의 몸을 불살라 부처 앞에 바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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