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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감성 한 잔

숲 : 피안(彼岸)의 장소

by 훈 작가 2025. 7. 11.

그럴 때가 있습니다. 지겨울 틈도 없이 바쁘게 하루가 지나가고 한 달이 훌쩍 지나가면 사는 게 뭔지 하고 느껴질 때가. 일상은 늘 숨 가쁘게 돌아갑니다. 숨이 차 허덕일 정도로 말이죠. 그럴 즈음 피안(彼岸)의 장소라도 있으면 잠시 일상을 접고 짧은 도피(逃避)라도 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죠. 마음은 간절한데 뭔가 발목을 잡는 듯한 게 있으니 뿌리치지 못하고 망설이게 합니다. 도피라는 말이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여행이라면 더욱 그럴 겁니다. 이럴 땐 여행이란 말에 집착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순히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잠시 감정의 순환이나 환기 정도로 생각하고 나서면 됩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그냥 가까운 숲을 찾아 걸으면 됩니다. 이름난 곳 명소라면 어차피 사람이 많습니다. 차라리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도 한적한 숲길이면 됩니다. 잔뜩 달아오른 감정의 엔진을 냉각시킬 정도의 숲이면 되니까요. 그저 흙냄새 나고 초록의 향기가 내 가슴을 젖게 할 정도면 충분합니다.

 

시원한 바람과 숲이 만들어낸 자연 에어컨이면 그만입니다. 숲길을 걸으면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잊습니다. 심폐 기능도 향상된다고 합니다, 특히 침엽수림이라면 상쾌한 숲의 향기와 더불어 피톤치드가 풍부하다고 하니 더할 나위 없이 힐-링에 도움이 될 겁니다. 자연적으로 기분이 상쾌해지는 건 덤이죠

소리와 향기로 느끼는 겁니다. 울창한 나무와 바람 소리, 산새들 소리로. 반드시 산 정상에 오르겠다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걷다가 또는 오르다가 마음에 하락하지 않으면 멈추면 됩니다. 목적을 달성하려고, 성취감을 얻으려고 하다 보면 부담을 느끼게 됩니다. 전혀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냥 말 그대로 자유를 느끼고 만끽하는 겁니다. 초록의 색감만으로도 숲은 충분히 마음의 피로감을 씻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피안(彼岸)이란 단어에 집착할 필요도 없죠. 단어의 의미대로 숲이 뭐 거창하게 진리를 깨닫고 도달할 수 있는 이상적 경지는 아니잖아요. 또 그럴 필요도 없고요. 연일 기승을 부리는 찜통더위를 피해 모처럼 숲길을 걸어 보니 그런 생각이 듭니다. 참 나오길 잘했다. 걸어 보니 너무 좋다. 진작 올걸 그랬다.

 

후암동 하숙 시절이 생각납니다. 주말이면 남산 숲길을 많이 걸었습니다. 특히 하숙 시절 내가 걷던 남산 1호터널  서울시청 남산 청사(구 안기부 청사) 뒷길은 한적하니(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좋았습니다. 여름밤, 가끔 남산 타워에 올라가 시원한 맥주도 마시곤 했었죠. 서울 야경이 멋지다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덥다고 에어컨 바람만 쐬다 보면 머리가 무겁게 느껴집니다. 그렇다고 주말에 방안에만 콕 쑤셔 박혀(방콕) 있을 수도 없을 거고요. 글 쓰느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뭘 써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을 땐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사실 그래서 컴퓨터를 끄고 카메라 가방만 챙겨 나왔습니다오늘은 숲이 내겐 피안(彼岸)의 장소나 다름없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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