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집시법 위반으로 경찰서 유치장에 이틀 동안 갇혀있던 적이 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숨 막힐 것 같았죠. 정신적으로 힘들었습니다. 자유를 잃은 시간, 나는 내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다음 날 저녁 무렵 별다른 문제없이 풀려났죠. 경찰서 정문을 나서는 순간, 아! 자유롭게 숨 쉴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습니다.
어릴 때 십자매를 키운 적이 있습니다. 녀석들이 귀엽기도 했고, 이따금 지저귈 때는 행복했죠. 그러던 어느 날 새를 꺼내 놀려고 하다 그만 모두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땐 몰랐습니다. 새에게 감옥이었을 거라는 사실을. 한참 뒤 깨달았죠. 착각했던 겁니다. 새의 울부짖음이 노래였다고 생각했던 게.
시도 때도 없이 날아오는 재난 문자, 폭염 경보로 날씨가 무더우니 외출을 삼가라는 메시지입니다. 지구 온난화의 역습이 불러온 상황입니다. 이해합니다. 그런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집에만 계속 있으려니 너무 답답하기 짝이 없습니다. (사실은 아니지만) 이건 집이 아니라 감옥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용광로 같은 무더위가 만든 회색 도심의 아파트 숲, 교도소처럼 조용합니다. 오가는 사람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파트 정문을 지키는 경비실 아저씨도 더위에 지친 나머지 꾸벅꾸벅 졸고 있습니다. 사람 사는 동네가 사람은 보이지 않고 정적만 감돕니다. 사람 사는 집이 왜 그렇게 느껴질까. 집은 사람을 가두는 곳이 아닌데 말이죠.
인간은 오래전부터 여름이란 계절을 감옥처럼 만들어 왔습니다. 이를 눈치 챈 기후학자들은 탄소배출을 줄여야 한다고 경고했죠. 오존층이 파괴되면 견디기 어려운 무더위와 혹독한 추위가 지구촌을 공격할 거리고. 하지만 외면하거나 무시해 왔습니다. 모두 그들의 말을 늑대소년의 거짓말처럼 여기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갈수록 죽을 맛입니다. 여름이면 너무 더워서. 이제 여름은 더 이상 낭만의 계절도, 젊음의 계절도 아닌 듯합니다. 시원한 바람도 없는 도심의 거리는 뜨거운 열기뿐입니다. 날마다 온열질환으로 인한 죽음이 보도될 정도로 가마솥 찜통더위가 기세등등합니다. 시원한 곳은 모두 에어컨이 가동되는 닫힌 공간입니다.
해마다 여름철 더위는 심하면 심했지 덜 하지는 않을 듯합니다. 산으로, 강으로, 바다로 만나러 갔던 여름이었습니다. 이젠 그 여름이 더 이상 예전의 여름이 아닙니다. 여름은 내 안의 나를 자꾸만 집안에만 가두려 합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행정안전부, 지방자치 단체, 소방청에서 외출을 삼가라는 안전 문자가 날라 옵니다.
감옥은 죄를 지은 사람들을 가두는 곳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린 우리가 지은 죄를 알고 있듯이 스스로 여름이 만든 감옥에서 나오길 꺼립니다. 밖에 나가 여름을 만나면 벌 받는 것처럼 고통스럽거든요. 그러느니 차라리 스스로 감옥에서 지내는 게 낫다 싶은 거죠. 답답하긴 하지만. 당장은 육체적 고통보다는 현실적 편안함이 좋으니까.
여름이 감옥이란 표현은 과장된 측면이 있습니다. 어쩌면 생각하기 나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예사롭게만 느껴지지 않습니다. 문뜩 떠오르는 한 문장이 있습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날씨가 덥긴 덥습니다. 아주 많이. 그럴지라도 내 마음속의 사과나무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