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름달이 처음부터 사랑받았던 건 아닙니다. 사실 눈썹 같았던 초승달이나 쪽배 같았던 반달이었을 땐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그랬는데 어느 순간 바뀌었죠. 이름에 보름이 붙을 때였습니다. 특히, 정월 대보름, 한가위 추석, 그리고 수능이나 입시를 앞둔 어머님들이 많이 사랑했습니다. 아마 다른 때는 별로 없을 듯합니다.
필요할 때만 찾아오니까 보름달은 서운했습니다. 말하기 그렇지만 사람은 원래 변덕이 심하니까요. 설령 보름달이 소원을 다 들어준다 해도 언제 그랬냐는 듯 돌아설 게 뻔한 게 사람이거든요. 사랑은 변치 않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사람들은 스스로가 지키지 못하는 사랑을 떠 벌일 때가 많습니다.

초승달이나 반달일 때도 사랑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보름달만 사랑한다면 당신의 사랑은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때론 사랑이 한눈팔 때도 있으니까요. 꽃이 아름다울 때만 사랑하는 사람들. 시들면 바로 추하다고 외면하는 사랑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보름달에 대한 인간의 사랑을 의심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건 죄가 아닙니다. 비난받을 일도 아닙니다. 하지만 선택적 사랑을 사랑이란 이름으로 포장하면 과연 그게 사랑인지 의문입니다. 자신의 입맛에만 맞는 사랑은 없을 겁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버리고 마는 그런 사랑 말입니다. 사랑은 서로 미워도 감싸고 받아들일 때 동행하는 명사입니다. 생의 마지막 날까지.

인생이란 긴 여정, 인연으로 맺은 사랑은 끝까지 함께 할 때 아름답습니다. 사랑, 시작은 영원할 것처럼 말합니다. 그렇게 시작한 사랑인데 파경에 이른 사랑이 의외로 많습니다. 심지어 그 주인공들이 당당하게 나와 수다 떠는 TV프로그램도 있습니다. 인간의 정서상 시청을 권장할 프로그램이 아닌 데 버젓이 전파를 탑니다.
세상이 변했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사랑을 파기하는 이혼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시시콜콜한 그들의 이야기가 TV 전파를 타는 세태를 보고, 이게 디지털 시대의 문화인가, 아날로그 시대엔 이러진 않았는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에 대한 편향된 가치가 왜곡되어 이혼이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세상이 된 것 같아 보기 민망합니다.

사랑, 변덕스러운 데가 있습니다. 처음엔 보름달인데 나중엔 초승달이라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싫어집니다. 파경에 이르는 이유, 비슷합니다. 어차피 서로의 차이를 애초부터 알고 출발하는 게 사랑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보름달이 아니라고 버릴 건가요. 대부분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할 겁니다.
달과 가장 멋지게 어울리는 표현이 있습니다. 허니 문(honey moon)입니다. 그렇게 골인한 사랑, 그 종착역이 이혼이라면 너무 비극입니다. 인생, 꿀맛 같은 사랑은 잠시일 뿐입니다. 살다 보면 사랑에도 쓴맛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쓴맛도 삼킬 줄 알아야 진정한 사랑의 맛을 알게 됩니다. 보름달만 사랑하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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