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엽은 가을의 종착역이다. 하지만 또 다른 출발역이기도 하다.
종착역에서 우리는 계절과 이별해야 한다. 떠나는 자의 삶, 보내는 자의 삶, 생은 늘 이별을 통해 사랑을 배워왔다. 자연의 법칙이다. 아쉬워할 것도 없고, 서러워할 것도 없다. 삶에 입력된 시간은 죽음에 이르러 이별을 알린다. 우린 그 시간 동안 꿈을 꾸고 생과 마지막 시간을 공유한다. 생의 주기는 그런 인연을 반복한다.
이별의 시간을 누군가는 죽음으로 정의한다. 애초부터 삶과 죽음은 하나인데 우리는 그걸 망각한 척하거나 외면하며 살이 왔다. 이를 부정한다면 생에 대한 미련 내지는 집착 때문에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거다. 유독 인간만 원초적 죽음을 삶과 분리하여 생각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자연의 섭리인 걸 알면서.

그런 이유로 애써 아닌 것처럼 포장해 왔다. 그리고 나와 상관없는 것처럼 산다. 그리고 가을이 남긴 낙엽을 아름답게 비유해 왔다. 생의 마감인 죽음을 죽음이라 하지 않고 낙엽이라 이름 붙였다. 생물학적 관점이 아닌 문학적인 감성으로 접근해 해석하려는 눈물겨운 삶에 대한 애착이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별은 죽음이다. 유감스럽지만 마지막 순간 삶의 허무를 깨닫는 경우가 많다. 삶을 더 사랑하지 못한 후회다. 우린 그걸 이 가을에 배워야 한다. 그럼에도 죽음을 무의식적으로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것은 이별과 죽음을 분리해 받아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가을 길에 흩날리는 낙엽들, 무심하다. 그저 계절이 남긴 흔적이니까. 또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는가보다 하고 스칠 뿐이다. 그게 한두 해가 아니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낙엽을 애잔한 마음을 가져 본 적이 없다. 늘 그렇게 살아왔기에 가을의 죽음을 안고 떠나는 낙엽을 아무렇지 않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사랑은 죽음 통해 다시 태어난다. 이별이 아픈 이유도 사랑 때문이다. 사랑이 없다면 슬프지도 아프지도 않다. 그래서 우린 죽음 앞에 눈물을 보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곧 진정한 사랑의 배움이고 깨달음이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 가르침이 죽음에 깃들어 있다. 낙엽이 떠나면서 던져 주는 메시지는 오로지 그것 하나가 아닐까.

우리가 말하는 꿈, 삶의 전부도, 행복의 전부도 아니다. 전부라면 꿈을 이룬 사람은 행복하지 않다. 꿈이 없어졌기 때문에. 그럼, 낙엽처럼 떠나야 한다. 꿈을 이루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사람은 없다. 분명한 사실은 삶은 시간여행이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계속 꿈을 꾼다. 여행이 끝날 때까지 꿈은 진행형이고 과정이어야 행복이 내 곁에 있다.
그래서 행복은 진행형 동사이어야 한다. 결과만 더 중요하게 여기면 행복지수는 작아진다. 과정도 행복으로 받아들이면 달라진다. 낙엽도 삶의 꿈을 위한 그런 과정이다. 그러기에 행복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자연이란 시계가 멈추지 않는 한, 낙엽의 꿈은 이어진다. 이 가을에 배워야 할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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