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비 내리는 오후, 우산도 없이 거리로 나섰다. 걷고 또 걷다 보니 아련한 추억 한 잔 마시고 싶어 고즈넉한 분위기의 한 카페를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 서자 훅하고 빨려드는 70~80 음악, '위대한 사랑'이 감성을 자극하며 들어왔다. 폴모리아 악단 연주곡이다. 창가에 앉자 잔잔한 리듬이 커피 향에 녹아 가슴 깊이 파고든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모금 마신 후, 시선을 돌려 창밖을 본다. 가을비가 여전히 울고 있다. 누군가의 실연이 비가 되어왔나 보다. 이젠 돌아선 사랑, 잊고 지우라 하는 것 같다. 유리창에 흘러내리는 눈물, 숱한 이별이 만들어낸 거리에 사랑의 상처를 씻어 주는 비가 흐른다. 비는 한 줄의 서정시를 남기고, 가을은 그렇게 내 곁을 떠나고 있다.

공원길 모퉁이 산책로의 나무, 눈물로 얼룩진 가을 잎, 울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또 그리움과 외로움을 뒤섞어 떠나야 함은 이별의 서곡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별을 미학으로 남기려고 우울히 비가 내리는가 보다. 차라리 겨울에 떠나면 좋을 텐데.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속절없이 비는 멈추지 않는다.
가을과 나누는 뜨거운 입맞춤, 마지막 이별의 미학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가을비에 눈물 젖어 보지 않은 사랑은 모른다. 이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은 날, 가을비가 내리는데 사랑을 모르는 연인들은 모두 우산 속으로 숨기 바쁘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가을의 깊은 사랑을 모르는가 보다.

사랑. 눈물 젖은 빵처럼 절실해야 내 젊은 날의 별이 된다. 달콤한 말, 욕망에 취해 눈먼 사랑은 불나방 같은 하룻밤의 유혹일 수 있다. 화려한 사랑은 찰나에 머물고, 식어버린 애정은 태양을 피해 달아난다. 그러기에 바람이 되어 사라진 사랑은 의미 없다. 나를 떠난 사랑. 어쩔 수 없었던 인연이라 생각하자.
가을비가 내리면 우산 속으로 도망치는 그런 사랑, 비겁한 속세의 사랑이다. 사랑을 하려면, 사랑을 배우려면 우산 속으로 숨지 말고 떠나는 가을과 마지막 춤을 추어야 한다. 사랑의 질감을 더 짙게 느끼려면 말이다. 사랑을 축복해 주는 비라는 걸 깨달아야 하는데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 풋사랑이 아니라 잘 익은 사랑이어야 결실을 맺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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