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이면 추억의 향수병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 있다. 붕어빵 집이다. 직장 생활할 때 신설동 로터리 천호대로 방향 동대문 우체국 횡단보도 건너기 전에 붕어빵 집이 있었다. 퇴근길에 직장동료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붕어빵을 사 먹던 기억이 난다. 어둠이 스며든 저녁 무렵 허기를 달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길거리에 하나둘씩 모습이 보이던 붕어빵 집, 어딘지 모르게 정감이 간다. 붕어 모양의 빵틀에 밀가루 반죽을 부은 다음 팥앙금을 떼어 넣어 불에 구어 만든 붕어빵은 늦가을부터 겨울까지 사랑받는 주전부리다. 가격 부담이 적어 누구나가 한두 번쯤 즐기는 군것질이 아닌가 싶다.
‘붕어빵’
부모와 자식 간의 닮은 모습을 비유할 때도 등장한다. 유전적 의미를 담은 외모를 비유할 때 붕어빵 이란 표현은 친근감 있게 주고받는 표현이다. 이 말은 붕어빵 집의 빵틀에서 만들어내는 붕어빵이 하나 같이 닮은 모양에서 착안한 말인 듯싶다. 빵틀에서 찍어내는 붕어빵이 똑같이 닮았듯이 부모와 자식 간에도 닮을 수밖에 없다.
‘피는 못 속인다.’라든가, ‘씨도둑질은 못 한다.’라는 말이 있다. 자식을 키우다 보면 이런 것은 닮지 않았으면 하는 게 있다. 대개는 좋지 않은 점이다. 이를 볼 때마다 자격지심이 발동하는지 자식에게 뭐라고 야단하곤 한다. 하지만 잘 통하지 않는다. 말은 하지 않아도 내심 하필이면 저런 걸 닮았지, 하며 쓴웃음을 짓는 경우가 있다.

그런 자식들을 부모들은 하나같이 애지중지, 금지옥엽 하며 자식을 키운다. 세상의 모든 자식은 금쪽같은 내 새끼가 아닌 경우는 하나도 없다. 예전 같은 않은 이유는 둘이 아닌 외동으로 크는 아이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더더욱 자식에 대한 사랑이 지극정성이다. 자식에 대한 사랑은 이유 불문하고 똑같다.
자식은 부모의 얼굴이요 거울이다.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 어쩔 수 없다. 늦은 나이에 커가는 아들 녀석을 보면서 불가항력의 무력감을 느끼는 때가 있다. 특히나 아들 녀석과 내가 의견이 상충하거나 충돌할 때 그렇다. 자식이 어느 정도 철이 드는 나이가 되면 자식의 의견도 존중을 해주어야 하는데 그게 아직도 잘 안된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 아무리 자식이라도 한 사람의 성인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면 한편으론 대견하다. 동시에 세월이 이렇게 흘렀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건강하게 자라주어 고맙기도 하고, 때론 안쓰럽기도 하다. 가끔 언론을 통해 청년들의 취업난이 심각하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걱정도 된다.
세상의 이치는 변함없다. 언젠가는 품에서 떠나는 게 자식이다. 그런데 떠나려고 해도 쉽지 않다. 사회적으로 독립하는 게. 그래서 요즘 젊은 세대들의 고뇌가 깊은 듯하다. 이를 지켜보는 부모들도 마음은 편치 않다. 안쓰럽게 바라보며 응원할 뿐이다. 그저 나처럼 고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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