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스마스이브다.
도시의 거리는 들떠 있었다. 마지막 달력이 12월이면 거리는 크리스마스 캐럴로 가득 넘쳤다. 번화가 거리엔 여지없이 구세군 냄비가 등장했고 상점들은 반짝이는 꼬마전구로 장식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크고 작은 크리스마스트리도 하나씩 진열되어 축제 분위기를 만들었고, 사람보다 도심의 거리가 먼저 들떠 있었다.
그랬던 거리가 요즘은 가라앉은 분위기다. 흔했던 크리스마스 캐럴도 듣기 힘들다.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허전하다. 화려했던 예전의 성탄절 전날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들뜨게 했던 12월의 거리가 아니라 좀 이상한 거다. 아마 어려워진 경제 때문이라서 그렇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듯싶다.
그런데 의아한 건 크리스마스 캐럴이 거의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커피숍도 그렇고, 서민들이 많이 가는 일반 식당, 술집, 호프집, 직장인들이 많이 찾는 선술집도 마찬가지다. 백화점이나 가야 겨우 들을 수 있다. 그래서 더 들떠야 할 분위기가 덜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번화가를 걸으면 저절로 흥얼거리던 크리스마스 캐럴이었는데….
이유는 음원 사용료 때문이란다. CD 음반이 디지털 음원으로 대체되면서 음원 사용에 대한 이용료를 내야 하는 모양이다. 이는 저작권법에 따른 조치이고, 법에 따라 백화점이나 대형 매장 또는 옥외에서 음악을 사용할 때 음원 사용료를 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정으로 소규모 매장에서 캐럴을 들려주지 못한다는 얘기다.

세상이 달라졌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아날로그 시절의 추억을 사라지게 한 주범은 디지털 기술과 이 시대가 만든 지적재산권을 인정하게 된 특별법이 강화된 탓이다.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를 넘어 이제는 문학, 음악, 미술의 소유권인 저작권과 상표권 등 산업적 소유권(특허)이 법적으로 보호받는 세상이 되었으니 이에 대해선 할 말이 없다.
어느 날 갑자기 거리에 넘치던 크리스마스 캐럴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내가 모르고 있었던 게 문제다. 하지만 아쉬움을 넘어 그립긴 하다. 시내 번화가를 걸을 때 항상 들을 수 있었던 크리스마스 캐럴이다. 아날로그 시대에 청춘을 보낸 나로서는 시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크리스마스이브인데 너무 썰렁하단 느낌이 드는 이유다.
하지만 진짜 유감인 이유는 따로 있다. 성탄절이 어떤 날인가. 아기 예수가 태어난 날이다. 모두가 축복해 주는 날이다. 사랑을 베풀고 어둡고 가난한 자에게 희망의 빛을 비추어주어야 하는 날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예수가 이런 사실을 알면 어떤 마음일까. 서운하지 않을까 싶다. 세상이 따뜻해지려면 있는 자가 없는 자에게 베풀어야 한다.
돈의 개념으로만 접근하니 갈수록 사회는 삭막해지고 따뜻함이 점점 차가워지는 기분이 든다. 크리스마스이브인데 캐럴을 돈 주고 들어야 하는 세상, 이건 뭔가 잘못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캐럴을 돈벌이 수단이 되어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적어도 성탄절이 있는 12월만이라도 거리에 캐럴과 함께 사랑과 낭만이 넘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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