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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라떼별곡

회식(會食)

by 훈 작가 2025. 12. 26.

이미지 출처 : Daum

모임이 많은 달이다. 대부분 송년 모임일 것이다. 직장, 동호회, 향우회, 동문회를 비롯한 이런저런 모임이 많은 연말이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되돌아보는 자리다. 이런 자리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술이다. 그런데 예전과 달리 부어라 마셔라했던 분위기는 많이 줄어든 모양이다.

 

회식문화는 식사와 곁들여 술이 등장하는 게 일반적이다. 비용은 대부분 지급이 높은 윗사람 몫이다. 규모가 큰 화사의 경우 법인카드로 비용 처리하는 게 보통이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내가 현역으로 근무할 땐 말은 안 해도 반강제성을 내포하는 자리였다. 1차 식사 자리가 끝나면 2차 노래방으로 옮겨 마무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싫든 좋든 얼굴도장을 찍어야 했고, 인사권 내지는 고과 평정을 하는 직급이 높으신 분들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한국적 조직문화의 특성상 어쩔 수 없이 눈치를 보며 사회생활을 해야만 했다. 심할 경우 술에 취한 상사를 택시 타고 집에까지 모셔야 하는 상황도 피할 수 없었다. 마음에 없어도 당연히 받아들여야만 했다.

 

뿌리 깊은 군대 문화가 사회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이란 잠자는 시간 빼면 하루 종일 얼굴을 맞대고 생활하는 공간이다. 여기에 회식문화는 신입사원 시절부터 업무의 연장이라는 세뇌 교육을 받은 터라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빠져나갈 여지가 없었다. 자칫 낙인찍히면 한직으로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회식문화와 술은 인간관계의 소통을 위한 약방의 감초 같은 요소다. 이 자리에서 술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였고 즐기기보다 취하기 위해 마셨다. 건배 잔이 서너 번 돌아가고 나면 서로 잔이 비워지기 전에 다시 채워지는 술자리는 늘 상사의 훈시에 이어 잡담으로 가득했다. 여기에 상사가 권하는 술을 거절하는 것은 금기였고 술 못하는 직원은 곤욕을 치렀다.

 

처음엔 분위기를 몰라 인사불성 상태가 된 적이 있었다. 나중엔 안 되겠다 싶어 미리 약국에 가서 약을 먹고 참석했다. 술이 센 편은 아니지만 정신을 못 차릴 절도로 약한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음 날이 문제였다. 속이 쓰려 적어도 반나절은 최악의 컨디션이었다. 사회생활 중 가장 어려웠던 것 중 하나다.

 

다행히 직장 내 음주문화가 관대한 편이어서 직장 생활엔 어려움이 없었다. 지방 지점에 책임자로 내려가 근무할 때도 배운 그대로 회식할 때가 많았다. 옛 생각이 났다. 술 못하는 직원에겐 첫 잔만 마시게 하고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다. 대신 직원들의 애로 사항이나 어려운 점을 경청했다. 동시에 그들의 근무 상황 개선에 관심을 기울였다.

 

회식문화가 나쁘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군사 문화가 남긴 부정적 문화는 사라져야 한다. 더불어 이제 술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권위적인 분위기 대신 직원들 간에 개인적인 취향이나 성향이 존중받았으면 한다. 반드시 술을 마셔야만 서로 소통이 잘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회식=이라고 하는 공식이 시대에 맞게 변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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