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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행복, 그대와 춤을

꽃과 별

by 훈 작가 2023. 5. 13.

별을 만났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일출 사진을 찍으러 나섰다가 허탕치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처음엔 무심코 지나칠 뻔했습니다. 캄캄한 밤도 아닌데 별이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요.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혹시 헛것을 본 게 아닐까 하고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자세히 보니 분명 녀석은 별이었습니다.

그때 생각했습니다. 별은 밤하늘에 피는 꽃이고, 꽃은 사람 곁에 피는 별일거야.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감성이 부족한 사람에겐 좀 생뚱맞을 수 있겠지요. 집으로 갈까 하다가 꽃을 만나 보고 가기로 했습니다. 앙증스러운 작은 꽃들이 몽글몽글 무성하게 피어 있더군요. 사실 아름답다고 해야 하는데…. 너무 솔직한 탓인가요.

아무리 보아도 별을 닮았습니다. 별이 꽃이 된 것 같은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별 보기가 힘듭니다. 아니 어쩌면 밤하늘을 볼 일조차 없는 여유 없는 삶을 살지도 모릅니다. 세상은 늘 그렇듯 바쁘게 돌아갑니다. 삶에 지친 일상을 뒤로하고 출퇴근길은 피곤하기 마련입니다.
 
그런 삶을 조금이라도 위로해 주려고 밤하늘의 별들이 꽃이 되어 우리 곁에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마 그래서 신이 꽃의 모습을 별처럼 만들어 세상에 보내지 않았을까 혼자 상상해 봅니다. 신이 존재한다면 인간을 위해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싶습니다. 

별을 닮은 이 꽃의 정체가 궁금하지 않나요. 때죽나무꽃입니다. 녀석은 5~6월에 핀다고 하네요. 그늘이 많이 진 곳에서는 자라지 않으며 계곡이나 시냇가 주변 등의 물기가 많은 곳에서 잘 자란다고 합니다. 녀석은 다른 꽃과 달리 특이한 게 점이 있습니다. 꽃이 하나같이 하늘이 아닌 땅을 향해 핍니다. 밤하늘의 별이 땅을 향하듯.

사진 속의 꽃은 우연이었습니다. 마치 밤하늘의 별이 그네를 타고 내려오는 것처럼 꽃 하나가 거미줄이 걸려 봄바람에 왔다 갔다 하고 있었습니다. 녀석에 이끌려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일출을 찍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 보려는 심산이었죠. 그런데 녀석이 봄바람에 춤추듯 가만히 있지 않네요. 어쩌겠습니까. 기다리고 또 기다립니다.

별이 되어 내 앞에 나타난 꽃, 호락호락 내게 마음을 열어 주지 않네요. 역시 꽃은 꽃인가 봅니다. 그렇게 저는 별의 마음을 얻으려고 한참 동안 시선을 떼지 않았습니다. 때론 사진도 연인들의 사랑처럼 기다림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그냥 가면 그만인데 좀처럼 발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 그것은 마음속에 있는 미학에 대한 사랑입니다.

결국 별이 저에게 마음을 열었습니다. 렌즈로 빨려 들어오는 천사의 모습을 그렇게 담았습니다. 정말 행복한 데이트였습니다. 일출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는 길이 우울할 뻔했는데 말입니다. 독일의 철학자 괴테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하늘에는 별이 있어 아름답고, 땅에는 꽃이 있어 아름답고, 사람에게는 사랑이 있어 아름답다고.

꽃은 낮에 피는 별입니다. 별은 밤에 피는 꽃이고요. 꽃이 사람을 찾는 일은 없습니다. 꽃이 사람을 사랑하지도 않지요. 하지만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습니다. 별도 그럴 겁니다. 신이 꽃을 만들지 않았다면 세상은 말 그대로 삭막할 겁니다. 밤하늘의 별이 없어도 그렇겠지요. 꽃이 별이고 별이 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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