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hoto 에세이/아포리즘

얘들아! 미안해

by 훈 작가 2023. 6. 21.


시선이 끌렸습니다. 시선을 빼었간 주인공은 어린 꼬마들입니다. 헬싱키 원로원 광장에서 어린 천사들을 만났습니다. 광장에 러시아 황제였던 알렉산드르 2세 동상이 있습니다. 그 앞에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들이 나란히 앉아있습니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표정이 너무 귀여운 나머지 사진부터 찍었습니다. 

주변에 있던 중국 관광객들이 우르르 몰려들었습니다. 중국어 특유의 시끄러운 언어가 소음공해처럼 들렸습니다. 그들이 저마다 스마트 폰을 꺼내 들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깜짝 놀란 아이 2명이 벌떡 일어나 뒤로 얼굴을 숙여 감춥니다. 미안했습니다. 아이들의 입장은 생각지도 않고, 사진도 허락받지 않았으니까요. 

내가 왜 사진을 찍었을까. 당시는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굳이 말한다면 느낌이었습니다. 꼬마 아이들을 본 순간 본능적으로 셔터를 누른 것 같습니다. 꾸밈없는 순수함과 아름다움 때문에 시선을 빼앗겼던 것 같고, 그 순간 사진에 대한 본능이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나쁜 의도는 없었지만, 잘못입니다.

찍고 싶은 풍경 속에 사람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켜 달라고 하면 자칫 시비가 될 수 있으니 기다립니다. 그런데  마음 같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 가능하면 멀리, 아니면 뒷모습이 보이도록 찍습니다. 초상권 시비 때문입니다. 취미로 즐기는 사진은 사생활 침해나 상업적 의도가 없습니다. 하지만 조심스러운 건 사실입니다.

 

요즘은 이런 사진을 찍지도 마음먹지도 못합니다. 부모들이 매우 민감해하고 허락도 안 해 줍니다. 그냥 지나가면서 티 없이 맑은 모습을 눈으로만 담습니다.  지금 같았으면 누군가에게  양해를 구하고 찍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거나  얘들아!  미안해. 아무쪼록 건강하고 행복하길 멀리서나마 기도해 줄게.

'Photo 에세이 > 아포리즘' 카테고리의 다른 글

꿈(5): 나는 나비다  (0) 2023.06.24
꿈(4) : 나는 너를 품는다.  (0) 2023.06.23
꿈(3) : 나는 너를 쫓는다  (0) 2023.06.20
꿈(2) : 나는 너를 먹는다  (0) 2023.06.19
꿈(1) : 나는 너를 만난다  (0) 2023.06.1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