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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라떼별곡

여름에는 겨울 추억을 이야기해 보세요

by 훈 작가 2023. 7. 9.

덥습니다. 여름이니 그러려니 하고 싶은데 예사롭지 않습니다. 땅덩어리가 크지도 않은 나라인데 어디는 장맛비로 물난리가 나는가 하면, 또 어디는 낯에는 찜통더위에, 밤에는 열대야까지 겹쳐 힘든 여름을 보내고 있습니다. 연일 장맛비가 내리면 날이면 햇볕이 그립고, 불가마 더위가 이어지면 시원한 소낙비라도 내렸으면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이럴 땐 빨리 여름이 빨리 지나가거나 차라리 오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러다 지난겨울 뭘 했었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추웠던 기억이 스치며 눈 내린 풍경이 떠오릅니다. 컴퓨터를 켜고 사진 폴더를 클릭하며 이미지를 화면에 하나하나 띄워봅니다. 시선이 멈춥니다. 순간, 아! 맞아. 그때 그랬었지.

눈을 기다렸습니다. 어린아이처럼요. 꼭 찍고 싶은 사진이 있었습니다. 눈꽃이 어우러진 산수유 사진입니다. 그런데 그게 마음 같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빨간 산수유 열매를 직박구리가 다 먹어 버리면 사진은 팥앙금 없는 찐빵이나 다름없습니다. 게다가 눈꽃이 필 정도로 눈이 내려주고 기온도 영하로 내려가야 하니까요. 

드디어 그날이 왔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다.'라는 말은 이 경우 예외입니다. 눈꽃이 사라지기 전에 사진을 찍어야 하니까요. 허겁지겁 카메라를 챙겨 평소 생각해 둔 포토존으로 달렸습니다. 과연 생각만큼 눈꽃이 멋지게 피었을까. 사진은 그럴듯하게 담을 수 있을까? 설레는 마음은 어느새 흥분으로 이어지며 심장을 마구 두드려 댑니다. 

그날 찍은 사진입니다. 운 좋게 하늘이 내려준 기회를 잡았습니다. 몽글몽글 빨간 산수유 열매가 마치 크리스마스트리에 매달린 산타 인형처럼 앙증스럽습니다. 하얀 눈꽃에 산수유나무가 잘 어울립니다. 파란 하늘이 보이면서 한 폭의 그림처럼 산수유 열매가 더 도드라지게 보입니다. 그날 작은 행복에 겨워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던 날이었습니다.

무더운 날씨는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숨도막히고 짜증도 납니다. 어떤 이는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번 더위에는 해당되지 않을듯 싶습니다. 오늘도 찜통더위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잠시 덥다는 생각을 지워보고 싶다면, 지난겨울 추억을 이야기해 보는 것은 어떨지요. 그야말로 겨울이 그리워지는 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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