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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라떼별곡

나만의 피서(避暑)

by 훈 작가 2023. 7. 27.

지루한 장마가 끝났습니다. 가을을 만날때까지 찜통더위와 지내는 일만 남았습니다. 생각만 해도 걱정입니다. 해가 갈수록 무더위가 기승을 부립니다. 아이들 여름 방학도 시작되었으니 어디론가 휴가 갈 생각을 하면 고민이 됩니다. 잔뜩 오른 물가 때문에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 같고, 안 가지니 체면도 안 서고 이래저래 생각이 많을 때입니다. 

보통 장마가 끝나면 곧바로 휴가철이 시작됩니다. 이와 관련된 말이 ‘피서(避暑)’입니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면 ‘바캉스(vacance)’가 있습니다. 요즘은 ‘바캉스’라는 말을 많이 쓰지 않지만, 예전에  이 맘 때가 되면 예외 없이 단골손님처럼 입에 많이 오르내리곤 했습니다.  기억컨대 서로 피서 갔다 왔니, 바캉스 다녀왔니 그렇게 말했었죠.  

피서는 말 그대로 더위를 피하는 걸 말합니다. 그 옛날 상류계급의 선조들은 더위를 피하는데 소극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유교를 중시하다 보니 점잖은 체면에 옷을 벗고 맨몸으로 물에 들어가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냥 나무 그늘을 찾거나 부채질을 하며 바람에 의지하는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다 생각해 낸 게 '탁족(濯足)'이었습니다.

이에 비해 서민들은 달랐습니다. 그냥 훌러덩 옷을 벗어던지고 물에 뛰어들어 미역을 감거나 우물가에서 웃옷을 벗고 등목해도 눈치 볼일 없었을 테니까요. 양반처럼 체면이나 체통을 지킬 필요가 없으니 나름 여름을 시원하게 보냈을 겁니다. 그런 면에서 하류층은 서민들은 양반들에 비해 행복(?)한 피서를 즐기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래도 탁족은 요즘 말로 가성비가 끝내주는 피서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알다시피, 사람 발바닥은 온갖 신경들이 모여 있습니다. 맨발을 시냇물에 담그면 순식간에 시원함이 온몸에 전해져 신체의 열기를 식혀줍니다. 동시에 기(氣)의 순환을 도와 정신도 맑게 해 주고 활력을 높여줍니다. 여름철 물 좋은 계곡을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나 홀로 즐기는 피서법이라면 나무 그늘이든 가까운 계곡에서 발을 담그든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주변에서 휴가 얘기가 나오면 체면 때문에 신경 쓰입니다. 해외로도 나가고, 유명한 리조트가 있는 바다나 산으로 많이 가는데, 이에 못지않은 휴가를 갔다 오지 않으면 뭔가 뒤처진 삶을 사는 것 같은 생각이 들고, 휴가 때면 이래저래 생각이 많습니다.

사진 속의 주인공들을 보면서 생각해 봅니다. 삶을 남과 비교하며 살다 보면 체면이란 단어가 자존심과 연결됩니다. 주변의 시선을 어느 정도는 의식해야겠지만, 내 능력과 분수에 맞는 삶을 고려하는 것이 우선이겠죠. 단순한 피서의 개념으로 휴가라면 탁족(濯足)이나 그늘에서 수박 한 조각이면 어떴습니까. 부러우면 지는 겁니다. 

그렇지 않고 진정한 휴가의 의미로 피서를 떠난다면 ‘바캉스(vacance)’ 개념으로 즐기시는 게 낫습니다. 복잡한 일상에서 잠시 탈출하여 조용하고 편안하게 자유를 즐기는 피서 개념의 휴가가 더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있을 겁니다. 피서인지 아니면 힐~링인지가 판단의 기준이 될 듯합니다. 어찌 됐든 주위 시선을 너무 의식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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